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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휘는 진화 호는 함당이며 동래정씨 시조 호장공의 31세손이다. 향리인 경북 예천군 풍양면 우망리에서 1873년 10월 10일에 선대인 현모공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가문은 자고로 향리에 세거하여 仕宦家(사환가)로서 번연하였으며 선생은 그 파종손으로 가도에 따라 한학을 전수하였다. 천성이 근엄하고 언행이 정중하여 예학에 조예가 깊이 사림행도와 풍교부식에 선도적 역활을 하였다. 대인 현모공은 고종조에 사간정언에 봉직중 경술국치를 당하였으며 일제들은 고관매수책략으로 일황이 내린 거금의 은사금을 선대인 현모공에게 수령토록 종용하였으나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망국의 비통함을 안은채 공직에서 물러나 향사에 전념하였다. 이러한 선대인의 배일사상을 이어 받은 선생은 조국이 왜적에게 침해당한것을 통분해하며 왜적을 구축할 기회를 노리던 중 처가인 채기중과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