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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맞은 1945년 겨울, 불교중앙총무위원에 선출되어 당시 미군정장관 존 하지 장군을 만나 일본인 승려들이 거주했던 사찰을 종단에서 인수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김구가 모스크바 3상회담에 반발, 강력한 반탁운동을 추진하자 12월 30일 결성된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그 뒤 동국학원의 이사장이 되었고, 1948년 3월 미 군정청 군정장관 딘 소장으로부터 5·10 총선거를 관리하기 위한 중앙선거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1949년 8월 20일 민족진영강화위원회 상무위원에 선출되었고, 1952년 문교부장관에 임명되었다. 1953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제3대 민의원으로 활약하는 등 정치에도 참여하였다. 1959년 원자력원장을 맡았고, 1963년 동국대학교 총장이 되어 인재양성과 교육에도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1964년 6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