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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께서는 서기 1897년 4월 12일에 김포군 양촌면 누산리 618번지에서 부 박희양 모 전희순의 4남1년의 4남으로 출생하시어 양촌면 양흥학교를 졸업하시고 농업에 종사 하시면서 조선독립을 항시 염원하시던중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친척 및 친지들인 박충서, 박승만, 안성환등과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키로 협의하고 비밀리에 태극기를 제작하는 일방 격문과 경고문 등을 만들어 사전에 주민들에게 배포한 후 1919년 3월 23일 오라니 장터 장날에 운집한 수백명 군중의 앞에 서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시면서 일본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향하여 행진하시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고초를 당하시면서 동년 6월 26일 경성지방법원(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으시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시고 1920년 6월 출감하신 후에도 동리 소재 예수교 장로교회를 중심으로 주민들에게 독립 사상을 고취 계몽하시는 등 항일 투쟁을 계속하셨습니다. 공께서는 슬하에 1남1녀를 두시고 1971년 2월 4일 서거 하시므로서 정부에서는 조국자주 독립운동과 국가 발전에 헌신 공헌하신 그 공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 대통령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