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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초면 독립만세운동 약사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을 기점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때 우리 고장 소초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이 폭발하였다. 3월 20일경 천도교구장 최종하와 천도교인을 비롯한 지역면민들은 횡성과 소초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3월 27일 장꾼으로 가장하여 횡성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 격렬한 시위행진을 주도하며 선봉에 섰던 강만형이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다시 4월 1일 만세시위를 강행하였을 때 강달회, 하영현이 일본군의 총격으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의병으로 활동했던 마을 훈장 박영하, 심의성, 신현철 등을 주축으로 한 소초면민 약 400여명은 마침내 4월 5일 부채고개에 집결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소초면사무소를 향해 나아갔다. 시위대의 김동혁, 김춘배 김인배는 소초면장 남상철을 강제로 시위에 동참시키고 박영하의 선창으로 소초면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주독립 의지를 만천하에 알렸다. 체포된 강만형은 고문으로 옥사했고, 소초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들은 대부분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으로 살점이 찢기거나 참혹한 태형과 징역형을 복역하는 등 형언하기 어려운 고초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