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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요정서(三樂亭序) 여기 선무봉 아래 감나무골(杮木洞) 아늑한 곳에 자리잡은 삼요정(三樂亭)은 이 고장 민족 교육의 요람이다. 나라가 외침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인 계미년(1883년) 봄에 삼혁당(三革堂) 김영원(金榮遠, 1853~1919) 선생께서 사재를 내서 설립하여 이 고장의 자제들을 모아 교육시켰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 이름의 유래는 첫째 산과 물이 잘 어울려 자연환경이 좋은 곳이고 둘째 학문을 연마하기에 좋은 곳이고 셋째 애국정신을 고취하기에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옛 선비들이 그저 산수를 벗하여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즐긴 요산요수(樂山樂水)가 아니라 민족이 처한 당면의 현실을 반영하였다. 이 세 가지가 바로 삼요정의 교육 이념이었다. 김영원 선생은 나라가 위기에 처한 시대에 임실군 운암면 선거리에서 태어나서 교육자이시며 혁명가이시며 독립투사의 처절한 삶을 살았다. 김영원 선생은 조실부모한 뒤에 학문 연마에 정진하여 이름 높은 선비로 무성서원의 장의를 맡아보았고 썩은 나라를 바로 잡고 외국 침략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동학의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양척왜(斥洋斥倭)의 기치 아래 감연히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임실 접주로 여러 교도를 이끌고 삼례집회 보은취회에 참여하였으며 동학지도자들과 함께 동학의 공인과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선생의 신원(伸寃)을 위해 서울 광화문 앞에서 상소운동을 전개하였다. 1894년 갑오년 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자 김개남 대접주 최승우 도접주와 함께 백산 봉기에서 시작하여 농민군 주력부대에 합류하여 황토재 황룡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