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page
40 2026년 3월 Special Theme 광복 제81주년 기념 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 양상과 특징 ③ 19회 발포로 61명 순국, 69명 부상에 12명이 사상 을 입었다. 홍원 주익의 김창복(金昌福), 박문호(朴文 昊), 송기복(宋基福), 이성제(李聖濟) 4명은 옥중에서 순국했다. 1,325명이 체포 구금되고 사전 제지나 예 비 검속으로 183명이 체포됐다. 따라서 3.1독립운동 으로 1,650명이 인적 피해를 당했다. 실례로 장진 신 남에 3월 14일 200명 군중 중 60~100명, 3월 19일 상남에 200명 군중 중 56명이 체포되어 2회 독립운 동에 116명 ~ 156명이 체포됐다. 함경남도 3·1독립운동의 특성 우선 초기 3·1독립운동을 주도한 지역이었다. 2월 하순 경부터 경성(京城)의 독립운동을 인지했고 지방 인사들과의 교류로 시대 상황을 파악하여 3·1독립운 동을 준비했다. 3월 1일 원산을 시작으로 3월 3일 함 흥, 3월 10일 단천·북청·신흥·이원 등지에서 대규모 독립만세를 외쳐 3·1독립운동사에서 3월 초순부터 중순 시기에 가장 활발히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한 지역이었다. 이는 천도교과와 기독교 교단의 결속력 과 학생들의 적극 참여 그리고 말단 행정 조직원(면 서기, 구장)의 활동 때문이었다. 둘째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이 전개됐다. 실 제로 독립만세를 116회 외쳤다. 사전 권유나 협 의 활동, 독립선언서나 유인물 제작과 배포, 태극 기 배포, 방화, 집단 사표, 일본인 주점 습격, 일 본 협력자 응징, 독립운동 자금 모금 등으로 사전 에 제지된 독립운동이 69회나 되었다. 따라서 함 경남도 3·1독립운동에서 독립만세운동은 185회 나 전개됐다. 셋째 평화적 독립운동과 아울러 공세적 독립 운동을 병행했다. 독립선언서나 유인물 배포 13곳, 독립 연설 18곳, 구한국기(태극기)나 깃발 사용 49곳 (42.24%)이었다. 독립운동 3곳 가운데 1곳 이상에서 독립운동 도구로 활용해 태극기와 깃발이 독립운동 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입증한다. 다른 지방보 다 월등히 태극기와 깃발을 활용했다. 북과 징을 치 면 영덕산에 올라 만세를 불렀고(북청), 깃발을 들고 북을 치면서 만세를 외쳤으며(정평), 야간에 등불을 밝혀 면계(面界)를 이동하는 만세 행진을 전개했다 (함흥 하양조면~상기천면). 한편, 헌병분견소나 주재소를 공격 습격(17곳)하 여 시설물이나 문건을 파손하며(2곳) 병기를 탈취 하려는 시도(4곳)가 있었다. 군청 습격(2곳), 군청에 서 만세(2곳), 경찰서와 주재소에서 만세(3곳), 면사 무소에서 만세(7곳)를 부르는 등 일제 기관(47곳, 40.52%)을 압박하는 공격적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 기도 했다. 이외 전화선 절단, 면사무소와 일본인 철 도 관사나 가옥에 대한 방화 시도, 일본인 주점 습격, 헌병 보조원과 경찰 순사보 및 일본 협력자들에 대 한 응징도 있었다. 1990년대 북청읍 중심가 전경(조선향토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