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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8월 양구지역에서 국군과 인민군 사이에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었다.
당시 파로호는 만수위가 되었고 국군 제7사단은 양구읍의 정림리를 거쳐 동수리에 다다르게 되었다. 작전명령은 파로호를 도강하여 군량리를 거쳐 방산을 지나 문등리까지 진격명령을 받고 지금의 순직지비가 세워져 있는 그곳에는 적군이 진을 치고 공수리의 건너편 또다른 공수리쪽에서 도강 명령을 받고 빗발 치는 총탄속에서도 적군에게 응사를 해 가며 도강을 감행하기 시작하였다.
호수의 중간쯤에 도달했을 때 적의 포탄이 대위, 오병철과 그 대원이 탄 보트에 명중이 되어 보트는 그자리에서 전복이 되고 대위, 오병철, 이등중사 하종원, 이등중사 박영오, 이등중사, 변태행등 대원들은 헤엄을 쳐 나와서 강열하게 대항다가 4명이 전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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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이라 전사하는 것은 흔한 일 이겟지만, 배가 전복 된 상태에서도 헤엄을 쳐 나와서 적군과 명열히 싸우다가 장열하게 전사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던 생존자들은 전쟁이 끝 난 후에도 매년 이곳을 찾아와서 참배하는 모습이 7사단에 전해져서 육군 제 7사단 공병대가 이곳에 파견을 나와 지금의 장소에 육군 대위, 오병철(吳柄哲) 이등중사, 하종원(何鍾元) 이등중사. 박영오(朴永五) 이등중사, 변태행(邊太行) 4인의 이름을 새겨서 순직지비(殉職之碑)를 세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