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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12월31일 금요일 4 (제180호) 관향조 소식 △박성호(서울 송파구) △박병인 (인천시 연수구) △박연희븡박해용(강 원 동해시)△박인근(충북 청주시)△ 박봉순(충남 서천시) △박희중(세종 시) △박창균(경북 영천시 ) △박종백 (경북 포항시) △박상철(경북 예천 군) △박복로. 박의묵(경북 청도군) △박종욱(경북 청송군) △박진하(대 구 수성구)△박만순(부산 연제구)△ 박영덕븡박남수(부산 수영구) △박문 호븡박성국븡박재헌(경남 창원시) △박 래수(경남 진주시) △박정영(경남 밀 양시) △박문갑(경남 통영시) △박갑 영(경남 산청군) △박명호(경남 의령 군) △박태식(경남 사천군) △박철환 (전남 장흥군) △박종인(전남 광양 시) △박래호(전남 장성군) △박형상 (전남 고흥군) △박영희(제주시 애월 읍)△박순원(제주한림읍) ◎ 서 울 △박상흔(동작구) △박화 수(강북구) △박재균(중구) △박인식 (강동구)△박봉근(광진구) ◎경기 △박성선(여주시) △박세균 (용인시) △박병호(성남시) △박영만 (화성시) △박영춘(부천시) △박재태 (의왕시) ◎강원 △박재형븡박상주븡박현균븡박 종복븡 박철수(강릉시) △박양호븡박우 철(원주시)△박병곤(횡성군) ◎충북 △박덕규(논산시) △박온섭 (괴산군)△박원선(청원군) ◎충남 △박종건(세종시) △박중식 (공주시)△박철희븡박낙순(아산시) ◎경북 △박상호(포항시) △박창태 (구미시) △박인현(경산시) △박열의 사기념회(문경시) △박종열(청도군) △박동원(봉화군) △박병용(울진군) △박희식븡박원재(예천군) △박운학 (의성군) ◎경남 △박정희(밀양시) △박광욱 븡박을수븡박천근븡박성현븡박호권(창원 시) △박상현븡박유자(진주시) △박경 택(거제시) △박경재(김해시) △박종 석(산청군) △박종철븡박판규(합천 군) △박용권(하동군) △박동춘(함양 군) △박기학(함안군) △박창주(고성 군) ◎대구 △박윤하(동구) △박종수 (수성구) △순천박씨충정공파븡박광 현(달서구)△박용택(남구) ◎울산 △박주인(동구) △박도문 (북구) ◎부산 △박종영(부산진구) △박희 문(금정구) △박무종븡박중섭(해운대 구) ◎전북 △박근수(김제시) △박천 수. 박종호(고창군) △박태근(완주 군) ◎전남 △박진석(순천시) △박연우 (담양군)△박종민(강진군) ◎광주 △박용권븡박균갑(북구) ◎대전 △박종보. 박순일. 박충자 (대전시) ◎제주 △박승준(한림읍) △박규헌 (애월읍) ※박남현구독자님 삼십만원 후원해 주셨습니다. 한빛신문은성손여러분이함께 만들어가는소중한자산입니다 한빛신문은2007년창간이후선조님의행장과종중의약사집성촌,본관별세거지변천사등 수 많은자료를기록으로남기는방대한 작업을하고 있는‘성손모두가함께만들어가는종보’입 니 다.그역할을충실히하면서선조님의현창사업과후손들에게물려줄박문(朴門)의뿌리를연 구 하고다듬어데이터베이스화하는데앞장서겠습니다. 한빛신문임직원일 동 뱚뱚제보및구독신청안내:053-588-7300,070-4250-0078 ▶fax053-581-0067▶e-mail:parkss1012@han mail.net 뱚※성손여러분이납부하여주신구독료는신문발행에큰도움이됩니다. 월3,300원으로종보를함께만들어가는주인이되어주세요. 구독료를가까운금융기관에서자동이체(월3,300원)하여주세요 뱚뱚뱛구독료자동이체계좌453013-55-000691농협한빛신문 [11월21일에서12월20일입금고객명단] 뱚▶자동이체등록해주신분 뱜▶지로납부및송금하여주신분 ※2021년 7월 2일자 E-우리은행 한빛신문구독료로입금해주신고 객님과 2021년 4월 13일자 PC신 한은행 3100로 입금해주신 고객 님,그리고 2021년 12월 11일 국민 은행으로 입금하신 고객님께서 는 신문사로연락 주시면 감사하 겠습니다. TEL:(053)588-7300 도시와는 다른 공간에서의 체 험을 통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탐구하고 스스로를 성찰해보는 화양동 선비체험 행 사가 지난달 7일 총18회를 끝으로 대단원의막을내렸다. 특히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를 총괄하며 명심보감을 통해 옛 선 인 의 지 혜 와 삶 을 이 해 하 고 배 워 보는 경서강독을 맡은 온섭 전 원 장의열성이돋보인시간이었다. 매년 화양서원 선비체험을 이 끌어 온 박온섭 전 회장은 자라나 는 청소년들의 인성 함양은 기성 세대의 몫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자녀들과 함께 찾아와 부모 자식 간의 신뢰를 쌓고 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한다고주장한다. 1박 2일 동안 충청도 양반고을 화양서원 선비체험은 지역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체험자들 이포근한고향을느낄수있다.지 역민들과 함께 만들어 먹는 감자 떡 체험 등과 같은 음식문화를 제공해주며 전기가 들어 오지 않은 어두운 밤길 체험은 자연의 빛을 느낄 수 있 는 화양서원 체험의 특징이다. 특히 물소리와 함께하는 경서강독, 와룡암 위의 국악콘서트는 현장에서만 느낄 수있는프로그램의백미이다. 정민 박온섭 원장은 이번 행사는 잊혀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되살리고, 선비가 갖추어야할 덕목가운데 가장 성취하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큰 목표인 인의예지 (仁義禮智)의 덕목을 다시 깨우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이라고 강조하고 우암 송시열 선생의 고고한 학문과 만동묘에 배향된 명나라 황제(의종,신종)에 대 한보은의일도함께하길바란다고덧붙인다. 그리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사회와 이웃에게 공경하 고 존중하고 나라에 애국하고 충성하며 마음과 행을 믿 음 있게 하라는 효제충신(孝悌忠信)의 글을 써 본보에 보내왔다. 화양서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삶이 배어있는 곳으 로 박 전 원장이 심혈을 기울여 복원하였으며, 또한 그 옆 만동묘 복원 또한 그의 뚝심으로 이루어냈다. 이에 더욱더애착을갖는곳이기도한다. 만동묘는 명나라의 신종과 의종에게 제사를 드리던 사당이다.신종은 임진왜란때 군대를 보내 우리나라를 도와주었고 의종은 신종의 손자로 명나라 마지막 왕이 다. 1865년(고종 2) 3월 29일 대원군은 명나라 황제들을 대보단(大報壇)에서 제사지내므로 개별적으로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만동묘에 안치되어 있던 명 나라 신종과 의종의 지방과 만동묘 편액을 서울에 있는 대보단의 경봉각으로 옮기고 만동묘를 철폐하였다. 그 뒤 많은 유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활되지 않았으 나,1873년대원군이실각하고이항로븡최익현 등 유림들 의 거센 상소로 1874년 2월에 왕명으로 부활되었다. 그러나 이미 시대가 바뀐 상황에서 만동묘의 운명은 되돌릴 수 없었다.1908년 일본 통감부는 만동묘를 폐철 하는 동시에 소유 재산을 국가 또는 지방관청에 귀속시 켰다. 그에 맞서 1910년에 송병순 등이 존화계(尊華契) 를 조직하여 제사를 비밀리에 올리는 등 유림들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었다. 그러자 일제는 1917년에 만동묘의 제사를 금지하고 유림을 구속하였으나, 유림들은 계속 제사를 올렸다. 1937년에도 일제는 유림들을 구속하고 위패와 제구를 불사르고 정면 1칸 측면 1칸의 비각 안에 있던 묘정비를 징으로 쪼아 훼손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1942년에는 건물을 불사르고 묘정비를 땅에 묻어버리 기까지 하였다. 결국 1943년에 만동묘는 완전 철거되었 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만동묘 묘정비는 앞 개울에 매 몰되어 있었는데, 1983년 홍수 때 발견되었다. 현재는 1 996년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되어 원래의 위치에 다시 세워져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동안 돌 계단과 주춧돌만 쓸쓸히 남아 있던 만동묘는 2006년에 진덕문과 홍살문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복원되어 옛 모습을그대로볼수있다. 한편 정민 원장은 이번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뿌리의 소중함 즉 조상없는 자손 없고,뿌리없는 나무가 없기에 숭조하고 애종 할 것을 전달하며 용비어천가 제1권 2장 의구절을붓글씨로옮겨보내와소개해본다. 용비어천가제1권제2장의구절 根深之木(근심지목,뿌리가 깊이 박히고 북돋은 나무 는) 風亦不 (풍역불올,바람과 태풍에도 요동하여 쓰 러지고 넘어가지 아니하고) 有灼其華(유작기화, 그 밝 고 꽃 봉 우 리 가 있 어 빛 이 나 고 ) 有 쁠其實(유분기실,꽃 수염이 있어 그 좋은 열매를 맺느리라) 源遠之水(원원 지수,근원이 멀고 샘이 깊은 물은)旱亦不竭(한역불갈. 가뭄이 심해도 물이 다 마르지 아니하고) 流斯爲川(류 사위천,흘러서 이 시냇물과 큰 강이 되어)于海必達(우 해필달,큰바다에이르러반듯이크게통달하느니라) 화양서원前원장박온섭‘화양동선비체험’이끌 어 4월24~11월7일(총18회) 화양서원선비체험행사를이끌어온 박온섭 회장이 경서강독을지도하고있다. 정민박온섭 효제충신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비대 면으로 이어져 각 종중마다 침체되지 않을까 걱정 속에 시간을 보내고 있 는 반면 다양한 방면으로 활로를 찾 고있는문중이있다. 상주(상산)박씨 판서공파 운곡공 후 행정종중(회장 정만)은 종중의 뿌 리와 활약상을 담은 ‘선조의 얼을 찾아서’를 발간 배포에 들어 가 종원들이 나 자신을 알고 뿌리를 알 수 있도록 배려해 귀감 이 되 고 있 다 . 발간에즈음하여박정만회장은시대는날로변천하고있는 데 400여년을 이어오면서 기록으로 보존되어 있지 않아 안타 깝게 생각하면서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며 우리 선조님의 생 활의 터전이 어디에서 와서 지금까지 생활하였는지를 구전과 여러 문헌자료를 활용하여 책으로 발간하였으나 부족한 점이 많았다며 종중 여러분의 유익한 자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 다. ‘선조의 얼을 찾아서’는 사벌국왕 연보와 약사,상주박씨 세 계 표 , 판 서 공 파 세 계 도 , 순 천 입 향 조 운 곡 공 의 입 향 약 사 , 향 사일정 행정문중 입향 약사, 문중을 빛낸 종손 추모당 건립기 등종원들이종중을쉽게이해할수있도록편집되었다. 행정 문중은 1676년경 여수시 율촌면 면소재지에서 0.9KM 북쪽에 사벌국왕 24세손인 휘 신방 공께서 율촌면 월산리 관 음 마을, 산수리 행정마을의 따뜻하고 온화한 태봉산 밑에 터 전을 잡고 생활하면서 13대에 걸쳐 1천 여 명의 후손으로 번 창하였다. 특히 1,520위를 모실 수 있는 추모당은 종중의 자랑으로 후 손들의구심점역할을하고있다. 상주(상산)박씨판서공파운곡공행정종중‘선조의얼을찾아 서’발간 비대면시대종원들의학습서발행으로소속감심어주고숭조사상고취 밀성박씨 의재 공파 종중은 지난 달 24일 의재공의 아들 참봉공(휘 만령), 진사공(휘 의전), 손자 도암 공(휘 대인),증손 송고공(휘 홍정), 현손 고직당공(휘 영철) 등 4代 5位 의시향을봉행했다. 이번 시향은 사전에 ‘코로나19’로 인 해 소수인원만 참여토록 공지한 가운데 종손 행순 현종을 비롯 영배 좌상공파대 종회장,진규,정규,현준,연규,일호,순 모,상섭 총무 등이 각각 제관을 맡은 가 운데상섭총무의집례로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은 전남 담양군 고서면 금현 리 선영에서 참봉공, 진사공, 도암공을, 광주북구 망월동에서는고직당공을,광 주 북구 장등동 선영에서는 송고공 시향 을 오후 3시에향사가 마무리 되었다.그 리고 의재공 종중과 송고공 종중의 정기 총 회 는 특 별 한 안 건 없 이 수 입 과 지 출 그리고 경과보고를 서면으로 대체하고 별도 기일을 정해 임시총회를 개최키로 했다. 12월 11일 개최된 임시총회는 성호 회 장의 임기만료로 신임회장에 근호 청계 문중 회장을 추대한 가운데 근호 신임 회장은 수락인사를 통해 미천한 몸으로 직책을 수행할지 걱정이라고 말하고 큰 성과 보다는 착실히 내실을 다지며 최선 을다해보겠다고말했다. 주요 안건으로 상정된 ‘부동산특별조 치법’을 이용한 공부상정리 및 일부토 지 매각의 건은 최근 시행되고 있는 부 동산특별조치법의 맹점(盲點)이 있어 포기하고 대신 불법매각 및 이전을 막 기 위해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키로 했다. 내년 8월 4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 ‘부동산특별조치법’은 40년 전 이루어 진 행위로 상속인에한해 이전이 가능하 며, 그 상속인은 상속자간 대표자로 이 어지며,지역의 농지위원의확인과법무 사 보증이 필요한데 지역 법무사협회에 서 대표법무사를 지정 그 수수료를 정하 는데 그 비용이 천차만별로 심지어 부동 산 평가액보다 보증료 및 이전비용이 상 회한경우도있다. 부동산 일부 매각의 건은 2필지로 매 각추진위원으로대종회장영배,회장근 호, 총무 상섭, 종손 행순 등 4인으로 정 하여 현지 시세를 면밀히 검토하여 매각 키로했다. 의재공 종중은 고려벽상공신 좌상공 박춘 선생의 증손으로 휘는 번(番), 호 는 의재(毅齋)의 후손으로 구성되었으 며, 이날 제향을 모신 참봉공(휘 萬齡, 호 樂堂)은 학행으로 천거되어 광릉참 봉을 지내고 조산대부 선공감 직장을 역 임하였으며, 동생인 진사공(휘 希筌, 호 愼庵)은 남명 조식선생 문인으로 중종 조에 진사시에 합격 성균관에 들었으나 정국(을사사화)을 예감하고 고향 창평 으로 낙향 지역의 유풍을 진작시키고, 후학양성에 매진했다.그러나 오랜 시간 속에 병화를 겪으면서 문헌 등이 소실되 어 행덕과 수치의 상세함을 상고할 수 없으나 오직 호남지에 실려 있는 석덕 (碩德,높은 덕)과 수학(修學)이 사림들 의 경앙 한 바 되었다는 구절이 전해진 다. 도암공(휘 大仁,호 陶庵)은 부모상에 시묘 삼년을 지극한 정성으로 하는 등 타고난 효자로 칭송이자자하여 그 효행 으로 광릉참봉과 훈도를 지냈다. 아들 송고공(휘 洪禎, 호 松皐) 또한 효행이 지극하였으며, 중종조에 진사시에 올라 성균관에서 수학하였으며, 아들 고직당 공의 영달로 인해 통정대부 첨지충추부 사에증직되었다. 고직당공(휘 英喆,호 孤直堂)은 모부 인 거상(居喪)에 시묘를 하며 정성을 다 하는 등 3代에 걸쳐 효를 다함으로써 효 행 가문의 명성을 이었다. 특히 계모(繼 母)를 즐겁게 하기 위해 67세에 과거를 보아 급제하였으며, 또 봉양을 위해 70 세에 영춘현감으로 물러나 정성을 다했 다. 광해군의 폭정에는 지역 유림을 선동 하여소를올리고선정을촉구하였으며, 향약을 만들어 지역의 인재육성에도 최 선을다했다. 밀성박씨의재공파추향및임시총회개 최 부동산특별조치법맹점으로인해이전등기대신가처분신청키로븣 신임회장박근호청계문증회장추대 박근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