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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4월30일 목요일 4 (제160호) 관향조 종친회 밀성박씨 밀성부원군행산공파(杏 山公派) 신간대동보 편찬안내 밀성박씨 밀성부원군 행산공파 대종회는 1997년 정축보 수보 이후 20여년이 경과함에 따라 최근 새롭게 개발된 전자 보서시스템을 활용하여 신간 대동보를 발간하기로 하고 2018년 11 월부터 인터넷 및 우편 등으로 수단 접수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정해진 수보기간 동안에 가능한 많은 현종님들이 동참하여 소중한 우리의 혈통에 대한 근본을 올바르게 하고 가보(家寶)로 자손만 대 보전될수있도록적극적인협조를당부드립니다. ▶수단접수기한:2020년 6월30일 ▶수단접수처: 뱚인터넷:홈페이지www.hengsan.co.kr 포털사이트(네이버,다음)“행산원”검색 뱚우편 :경남 거제시 아주동해와루106동606호,박행산 뱚문의:010-9689-2525, 사무실055-731-1206,팩스 055-731-1214,행산대동정보원 ※수단유사명단: ◆ 편수위원장 박수옥(부산, 010-7402-6572) ◆부산지역 박구수 010-4158-3678 ◆ 찬성사지파 박수경(밀 양, 010-7918-7567), 박규석 (청도, 010-9370-2358), 박진흠(청도, 010-3541-2344), 박정현(밀양, 010-4331-90 9 3) ◆광산지파 박정웅(창녕, 010-8561-2747),박을수 (창원,010-3572-3335),박동주(창녕,010-3880-66150) ◆ 풍산지파 박재화(밀양,010-2557-9317), 박인천(서울, 010-3808-1909) ◆ 전주지파 박찬우(전주, 010-8642-7 2 76), 박철균(전주, 010-3251-7489) ◆ 소윤공지파 박봉호(정읍, 010-4655-1956), 박광희(정읍, 010-9370-235 8) ◆ 진사공지파 박경무(울산, 010-4952-1153), 박종대(울산, 010-7276-0607) ◆ 대구광역시및경상북도일원박 규석(청도, 010-9370-2358),박준석(대구,010-3829-9809),박무흠(대구,010-4521-0024),박재철(대구,010-3 5 12-4807), 박진하(대구, 010-3811-91920 박영식(대구, 010-3802-9206), 박대현(대구, 010-3841-7057), 박민호 (대구, 010-5263-3905) ◆돈와공지파 박충석(밀양, 010-3844-3644), 박일환(밀양, 010-3594-4477), 박병호(삼 척,010-5368-4189) 뱚 ※수단전용계좌351-1040-5361-13농협예금주밀성박씨행산공파대종회 ※각소문중별수단유사가정해지지않은종중은빠른기간내에유사를추대하여수보/발간에도움이되도록 협조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아울러,주변에 계시는 행산공파 일가 분들에게 신간대동보 발간 소식을 널 리알려주시기바랍니다. 밀성박씨밀성부원군행산공파대종회종회장박중희뱜뱚 밀성박씨밀성부원군행산공파대동보편수위원장박수옥拜 뱚뱚뱚※수단이접수되지않은종원은전자대동보에등재되지않으며, 뱚뱚뱚뱚추후등재시 수단 비용이점차증액될예정이오니가급적정하여진 뱚뱚뱚뱚기한내에완료될수있도록협조바랍니다.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 욾욾 전남 고흥군 두원면 학곡리(두곡마을) 소재 숭양 사(崇陽祠) 시향이 정일인 음력3월 1일 정규 前 회 장의 집례로 동수 초헌관의 강신례와 초헌례에 이어 종성 아헌관,성삼 종헌관의 헌작으로 엄숙봉행되었 다. 숭양사는 헌종 기유(己酉,1849년)년에 흥양현(현 고흥군)과역면가산리의봉암사(鳳巖祠)에규정공 (휘 현), 동계공(휘 은춘), 매헌공(휘 응수) 3위가 옛 흥 양 출 신 충 신 열 사 들 과 함 께 배 향 되 었 는 데 , 1 8 6 8 년 서 원 철 폐 령 에 의 해 훼 철 되 어 향 사 가 끊 겼 다 가 1935년(乙亥) 후손들의 종의로 현 위치에 사당 3칸, 강당(敬慕齋) 4칸, 신문(忠義門), 외삼문(興慶問), 고직사 3칸을 창건, 숭양사(崇陽祠)라 이름하고, 규 정공(휘현)을주벽으로전서공(휘침)참판공(휘눌 생) 동계공(휘 은춘) 매헌공(휘 응수)을 배향하여, 매년 춘 추로 정일(丁日)에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향 사를 받들어오다, 60여년의 풍상으로 사우가 퇴락하 여 1997년에 지방정부 지원금과 후손들의 성금으로 대지를 매입 확장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重建) 하여매년음력3월1일에향사를올리고있다. 숭양사의 숭양(崇陽)이란 복양(復陽) 또는 광복 (光復)과 같이 사당을 다시 빛나고 높게 회복하였다 는뜻으로풀이할수있다. 배향된 동계공과 매헌공은 임진왜란에 전사한 충 신열사이자효자로유명하다. 동계공 휘 은춘(殷春)은 1544년생으로 체격이 크 고 용모가 단장하였는데 어릴 때부터 궁마 익히기 와 병서 읽기를 좋아 하였으며 학문을 할 때는 밤새 는 줄 몰랐다, 1576년 33세에 식년무과에 급제하여 사재감 주부, 첨정감을 역임하고, 임진왜란에 첨사 김완과 함께 같이 거의하고 이충무공 진영에 달려가 합류했다. 충무공은 공의 지략과 절의가 뛰어남을 크게 기뻐하며 함께 계략을 논의 하였으며,1592년 5 월4일 첫 옥포해전 부터 1598년 10월 왜교성 전투까 지수많은전공을세웠다. 1597년 9월 16일 벽파진대첩(명량대첩)때는 실전 경험이 있는 장졸 160여명의 수군 재건 노력 및 충무 공의 지략과 용맹으로 크게 이기니 해남현감 유형은 공(公)의 전공을 통제사에게 최고라 추대하였으며, 조정에서 듣고 인동부사에 특별히 제수하였으나 나 가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흉적들을 모두 섬멸하지 못하여 종묘사직이 위급하고 국가가 위태로운데 어 찌 가히 휴양하고 자적하리요”하고 계속 종군하였 다. 1598년 9월 20일~10월 4일에 조(朝), 명(明) 연 합군의 왜교성 합동작전에서 명나라 육군의 배신으 로 조선수군이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이때 그도 선 두에 서서 싸움을 독려하고 격려하며 용감히 싸우다 가 홀연히 적탄이 날아와 가슴에 맞아 절명에 이르 게 되어서도 북쪽을 향하여 꿇어앉아 말하기를 “죽 음을 당하게 되나 나는 신이 되어 적을 섬멸하겠습 니다.”하고운명하였다. 난(亂)이 평정된 후 호조참판에 증직되고 선무훈 에녹훈되었다. 동계공의 아들 휘 응수(應秀)의 字는 한서(漢瑞), 호는 매헌(梅軒)으로 1566년에 태어났는데 천성이 강개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1588(무자)년 23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군관이었는데 1592년 임진왜란 때 임금이 서쪽으로 파천한다는 말을 듣고 즉일로 급히 가서 대가(大駕)를 호종하였고 행재소에서 물샐 틈 없 는 경 계 등 모 든 군 사 일 을 성 심 을 다 하 니 이 를 본 윤두수, 이항복 두 재상들이 참 의사라고 칭찬하며 중부장(中部將)에 추천하고 환궁 후에 종5품 훈련 원판관(判官)에배수되었다. 1598년(戊戌)에는 부산 첨사로 진양(진주,양산) 지역에 배치 되었는데 아버지가 전사했다는 비보를 듣고 복수를 결심하고 왕에게 아뢰니 선조는 그 뜻 을아름답게여겨말과화살300개를하사하였다. 노량진에 이르러 먼저 아버지의 묘에 곡하고 이순 신 장군을 만나 본 후 노량해전에서 무수히 많은 적 을 살상하고, 정기수 이완 등과 함께 합세하여 싸우 다가 적탄에 맞아 전사 하였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 쓸어 지지 않고 서있었다, 이 소식을 통제사가 듣고 제문을 지어 제사를 지내자 스스로 쓸어 지니 모든 사람들이 기이하다 하였으며, 이 날이 11월 18일 이 었다, 이때 공(公)의 나이 33세였고, 부자가 함께 임 란에서유명을달리했다. 난이 평정된 후 선무훈에 녹훈되었고,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 고흥숭양사시향봉행 규정공·전서공·참판공·동계공·매헌공등5위븣선조위업기려 숭양사전경①사당숭양사②내삼문충의문③ 강당경모재④ 외삼문흥경문 경내의동백나무가만개하면서지나가는길손을부르고있다. 숭양사시향이 지난 24일봉행된가운데제례에참례한 제관들 이 함께하고있다.(관복 입은제관 오른쪽부터초헌관 동수, 아헌관 종성,종헌관 성삼순) 지난 2월 중순 신천지 대구교회 등을 통해 코로나19가 번져 확진자가 속출하자 정부는 2 월 23일 코로나19 위기경보를 심각단계로 격 상했습니다. 그러나 폭증하는 검사수요를 감 당하기에는 전국의 보건소나 병원 선별질료 소로는역부족이었습니다.급박하게돌아가는 상황에서 코로나19 국내 1번 확진자의 주치의 였던 인천의료원 김진용 감염내과 과장이 학 회에서 진료와 드라이브스루를 결합한 아이 디어를냈다고합니다. 의료진과 환자의 안전을 함께 지키면서 검 사와 진료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넓은 운동장 에 선별진료소를 만들자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제안을 접한 경북대병원이 처음으로 컨테 이너를 설치하고 검사에 나섭니다. 드라이브 스루가 유명해진 것은 지방정부 가운데 처음 이 방식을 도입한 고양시 선별진료소 덕분입 니다. 고양시 재해대책본부회의에서 이재준 시장 은 보건소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감염위험이 있는데 꼭 거기서만 해야 되는냐 넓은 광장 같 은데서 하면 어떠하냐고 화두를 던지자 참석 자들이 반신반의 하던 중 대한 예방의학회 코 로나19 대책 위원장인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 수가 드라이브스루 방식을 소개하자 일산병 원장과 덕양구 보건소장은 그게 답인 것 같다 고 조언해 주자 고양시는 2월 24일 드라이브 스루 방식도입을 전격 결정했고 25일 한번에 50대 주차가 가능한 덕양구 공영주차장에 선 별진료소 설치를 마치고 26일 오전 10시부터 검사를 시작합니다. 의료진의 권유에 따라 폐 쇄된 컨테이너가 아니라 비말이 노출됐을 때 안전한 개방형 몽골텐트를 활용하였고 추위 를 피하려고 설치한 가림막도 떼어내는 등 시 설비 또한 경기도가 설치한 음압기를 탑재한 컨테이너 선별진료소 1곳당 8억원이 넘는다 하니 드라이브수르설치 비용은 총액이 1,500 만원들었으니가성비또한엄청납니다. 소문을 듣고 고양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의 심환자들이몰려들었습니다.설치다음날에는 384명이 방문해 112명이 검체채취하는 기록 을 세 웠 다 고 합 니 다 . 3월 18일까지 22일간 2,378명이 방문해 하루 평균 108명이 진료를 받았고 1020건의 검체채 취결과 3명이 양성확진 판정을 받는 등 정부 의 자동차 이동형 선별진료소의 표준 운영모 델로 지정된 이 시스템은 미국, 일본과 영국, 독일 등 세계 각국에서 도입해 운영중 이며 고 양시가 낯선 드라이브스루 방식을 신속하게 도입해 성공시킨 것은 의료진 등이 참여한 민 관협력과 지방정부의 재빠른 의사결정이 복 합된결과물이라할수있다. 지난 1월 26일 국내 3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고양시는 당일부터 시장,부시장 보건소장, 국 실장 등 20여명으로 재해대책본부를 꾸려 하 루도 빠짐없이 회의를 진행하며 노인요양시 설과 역,터미널 등에서 발열체크,마스크쓰기 운동 건물소독 어린이집 휴원 등 의사결정이 이루어 졌고 빠르게 실행에 옮겨 감염확산에 최선을 다하는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시작된 드라이브스루시스템은 감염병 검사를 거쳐 도서관 안심대출 서비스 등 다른 영역으로 확 대되어 다양하게 진화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러나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안정화 되 어 안심카 선별진료소는 더 이상 운영되지 않 기를희망해봅니다. /박봉준명예기자(경기고양시지부) 세계가도입중인븮고양드라이브스루븯탄생 에대해 밀성박씨충헌공파경기도고양시원당종중회 밀성박씨 삼사좌윤공파대종회는 지난 4일 (음3.12)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소재 모 아재 경현사에 배향되어 있는 7현 선조 춘향 을 ‘코로나19’로 인해 집행부 임원진만이 참례 한 가운데 승규(昇圭) 집례의 창홀에 따라 주 벽인 삼사좌윤공 신위에 초헌관 종해(鍾海), 아헌관 영규(榮圭), 종헌관 희규(熙圭) 축관 영규(永圭) 현종이 맡았으며, 배향된 각 신위 에는 고성파(高城派) 휘 수(粹), 창원군파(昌 原君派)휘 기(奇),초암공파(草菴公派)휘 인 우(麟祐), 정국군파(靖國君派) 휘 위( 쭈), 구 산군파(龜山君派) 휘 천( 횡), 태안군파(泰安 君派) 휘 원의 公의 신위에는 지석(志碩), 계 청(桂靑), 창수(暢洙), 봉규(奉圭), 종대(鍾 大),정석(丁錫)현종이분헌관으로분향과헌 작으로엄숙봉행했다. 삼사좌윤공파(三司左尹公派) 파조(派祖) 의 휘(諱)는 을재(乙材) 호(號)는 아천(雅川) 으로 밀성대군의 7세(世)로 요동독포사 휘 란 (瀾 )의 아 들 5 형 제 중 넷 째 휘 영 후 (永 , 戶 曹 典書)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판각(版閣)을 지 낸 성린(成麟)이다. 려조에서 문과에 급제하 여 삼사좌윤과 명종조에 이르러 밀직부사(密 直副使,정3품)에 올랐다. 삼사좌윤공(휘 을재)은 견기(堅基), 입기 (立基), 덕기(德基) 삼형제를 두면서 크게 번 성한다. 장남 견기(堅基)는 형조참의를 역임 하고 판도판각에 증직되었으며, 그의 아들 회 (回)는 형조정랑으로 계증(繼曾), 계맹(繼 孟), 계안(繼顔)을 두었으나 첨사(僉使)를 지 낸 장남 계증과 셋째 사문진사 계안은 후사가 없고차남계맹(繼孟)으로이어진다. 문하시중을 지낸 계맹의 아들 순철(順哲)은 중서령, 호부시랑, 밀직부사이고, 그의 아들 인숙(仁淑)은 전의판서, 손자 길(吉)은 조선 초 태종 때 전서(典書)를 지내고 아들 수(粹) 를 낳으니 이분이 고성파(高城派)의 파조가 된다. 좌윤공의 차남 입기(立基)는 호부상서, 문 하시중 병마원수를 지내고 그의 아들 기(奇) 는 고종 갑술(甲戌, 1214년) 문과에 급제하여 주요 요직을 거쳐 창원군(昌原君)에 봉해져 후손들은 창원파 혹은 창원박씨로 분적되었 다. 좌윤공의 삼남 덕기(德基)는 판각(版閣), 밀직부사,문하시중을 역임하고,그의 아들 정 구(鼎九)는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내고 밀 산군(密山君)에 봉해지고 아들 기(璣, 大提 學),준( ,吏部尙書)형제를두었다. 대제학공(휘 기)의 아들 옥성(玉成, 同正) 이 아 들 형 제 천 응 (天 應 , 判 事 ), 천 명 (天 命 ) 을 두어,장남천응은다시인식(麟植)과인우(麟 祐)를 두었으나 장남 인식은 손자 수종(壽宗) 에 이르 러 무후(无后)이고 차남 인우의 호 (號)는 초암(草菴)으로 전법판서를 지내고 병 조참판에 증직되었으며, 초암공파 파조가 된 다. 동정공 옥성의 차남 휘 천명(天命)은 전법 판서 호부시랑, 시중을 지내고, 아들 광후(光 厚)는 보문각대제학을 역임하고 위( 쭈)와 천 ( 횡)을 낳으니 장남 위는 정국군파 파조,차남 천은 구산군파 파조로 구산박씨로 분적되었 다. 밀산군(密山君)휘 정구(鼎九)의 차남 준은 문하시중으로 아들 원효(元孝), 원제(元悌), 원충(元忠),원신(元信),원례(元禮),원의(元 義),원렴(元廉),원성(元聖),원현(元賢)등 9 형제를 두었으나 이중 장남 원효의 아들 희문 (喜 文 ) 이 숙 부 원 의 (元 義 ) 의 대 를 이 으 면 서 아들 9형제중 여섯째 휘 원의(元義)의 후손들 만전해진다. 휘 원의는 문과 장원으로 광록대부 상서좌 복야에 오르고 태안부원군에 봉해짐으로서 태안파파조가되고태안박씨로분적하였다. 밀성박씨삼사좌윤공파모아재춘향 봉행 경현사7현(七賢)유덕기려 모아재춘향이 지난 4일봉행된가운데참례한 제관이 함께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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