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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중식은 경기도 포천군(抱川郡) 신북면(新北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포천군에서는 3월 말 여러 면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29일 소흘읍 무봉리(茂峰里)에서는 1,000여 명, 좌무리(佐茂里)에서는 200여 명, 신북면에서는 1,000여 명의 시위대가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유중식은 1919년 3월 29일 밤 영중면(永中面) 거사리(居士里) 자신의 집에 투입되어 있는 ‘3월 30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사무소 부근에 집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르자’라는 취지의 통문을 읽고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그 통문을 같은 마을 사람들에게 회람시켰다. 거사 당일 유중식은 수십 명의 마을 주민을 이끌고 신북면사무소에 나아가 1,000여 명의 군중과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유중식은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고,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