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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김응섭 선생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다. 공훈록에서도 찾을수가 없고, 다만 한자가 다른 김응섭(金應涉)지사의 공훈록은 다음과 같다. 서간도지역의 독립군 단체인 대한독립군에서 활동하였다. 1910년을 전후하여 해외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독립운동가들 사이에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민은 무장세력의 양성과 군비를 갖추면서 독립운동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전제 아래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게 되었다. 특히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지역에는 70여 개의 독립운동단체가 조직되었다. 특히 서간도 지역에는 대한독립단, 서로군정서 등이 대표적인 무장조직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김응섭은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한 이 단체는 1919년 4월 15일 한말 의병장 출신인 박장호 ·조맹선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결성되었다. 김응섭은 대한독립단 단원으로 각 방면으로 광복사업에 힘쓰고 특히 중국인과의 사이에 신용이 두터워 중국 지방정부와 외교사무에 진력하다가 1921년 관전현(寬甸縣) 석두하자사변(石頭河子事變) 당시 전사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