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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미동은 조선초기부터 풍산김씨가 세거해온 집성촌이다. 풍산김씨 시조이신 휘 문적의 증손이신 휘 연성께서 계림(경주)에서 풍산현 석릉촌에 옮겨살면서 이곳 오릉동에 별서를 두시었고, 벼슬따라 고려조 송도(개성)로 이주하여 대대로 살다가 조선조 초에 송 도사족을 한양으로 이주케 함에 따라, 8세 휘 자순께서 한양 장의동(서울 청운동)으로 옮겨 살다가 이곳으로 낙향하였다.
그 어른의 손자 휘 휘손과 증손자 허백당 휘 양진 녹선 청백리께서도 자주 이곳에 내왕하시었다 한다. 허백당의 아들 장암 휘 의정 시 문정공께서 을사사화 후 기관낙향하여 오릉동을 오묘동으로 고쳐 이곳에 은거하였다. 그 후 문정공 장암의 손자 유연당 휘 대현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진사에 오르고 그 중에도 오형제는 문과급제 하였음에 당시 인조께서는 팔련오계라 하고 동명을 오미동이라 사명하셨다.
그 때부터 오미동이라 부르게 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거 자손위일촌(世居子孫爲一村)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