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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응규 의병장 생가"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 관리번호: 43-1-56호 / 관리자 : 함양군수 노응규 의병장(盧應奎,1861~1907)의 본관은 광주(光州)이며, 자는 성오(聖五), 경오(景五), 호는 신암(愼菴)이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서 노이선(盧善以)의 2남으로 태어났다.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으로 을미사변 직후, 승려대표 서재기와 정도현, 박준필, 최두원, 최두연, 임경희, 성경호 등 문인대표들과 함께 진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함안·마산·진해 등지의 의병을 합쳐 그 휘하의 병력이 1만을 넘었다. 1896년에 정한용 진주의병장과 힘을 모아 일본군에 함락된 진주성을 단숨에 격파하고, 이후 영남과 호남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1907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경성 감옥소에서 고문으로 순국했다. 이에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建國勳章 獨立章)을 추서하였다. 노응규 의병장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8년부터 사업비 19억 2천만원을 들여 그의 고향인 함양군 안의면 당본리 집터 추정지에서 서북쪽으로 약간 이격된 곳에 2.837㎡의 부지를 매입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 등 3동의 한옥구조물로 생가를 복원했다. 이곳에 복원된 생가는 신암 노응규 의병장의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며, 선현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마음속 깊이 되새겨 후손들에게 배움터로 삼고, 또한 그분들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 번영을 누리게 한 주인공들이었다는 자부심과 명예를 선양하고자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