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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전투 5 한-영: 피로 맺어진 유대 누가 우리를 떠어 놓을 수 있으리요? 영국 왕립얼스터소총부대 좌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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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진강, 그리고 평가 임진강에서 제29보병여단은 1,00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그리고 종공군은 7,000~10,0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손실을 입었습니다. 제29보병여단은 중공군 최대 공세 중 충격 단계(전투의 시작 부분)에서 핵심 돌파구역을 사흘간 버텨내며, 중공군의 실패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글러스터대대의 저항은 세계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들은 미국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받았으며, 미8군 사령관 제임스 벤 플리트 장군은 이들의 전투를 '현대전 속 용감한 부대의 가장 훌륭한 예시'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 일간지 피가로는 '이 영국인들의 용기와 끈기, 그리고 상실감은 그들에 대해 숨죽인 목소리와 신성한 존경의 어조로 말할 수밖에 없데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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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을 위해 싸우는 영국 영국은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큰 규모의 유엔사 참전국이었습니다. 영국군은 '부산 교두보 전투'에 참전했으며, 유엔군을 이끌어 북한의 서쪽 측면을 공격해 아군의 후퇴를 방어했고, 호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군이 포함된 영연방 제1사단은 서울 북쪽에 위치한 전략지를 방어했습니다. 영국 왕립해군이 황해/서해를 순찰하는 동안 왕립해병대 코만도는 북한의 깊숙한 곳까지 습격했습니다. 81,000명 이사의 영국군이 참전하였습니다. 그 중 1,078명이 전사하였고, 2,674명이 부상당했으며, 254명이 실종되어 포클랜드, 이라크, 아프카니스칸에서의 사상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며 한국전쟁은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분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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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불사조 국가 일부 참전용사들은 트라우마로 인해 한국으로 재방문하는 것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을 다시 방문한 분들은 폐허에서 재건된 한국을 보고 매우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한국은 1960년대에 경제적 기적을 일으켰고 1987년에는 민주화를 이루어냈습니다. 경제 강국인 오늘날 한국은 손꼽히는 글로벌 브랜드, 우수한 국가 인프라, 그리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대중문화의 분고장입니다. 영국과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비록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민주주의, 권리, 그리고 자유에 대한 헌신을 서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가치와 목표에 있어서 그들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