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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훈록을 검색해보니, 박호암(朴虎岩, 이명 馬子超). 본적이 장흥군 용산면 월송리 159 전남 장흥(長興) 사람이다. 1929년 4월 숙부 박노영(朴魯泳)을 찾아 부산에서 평안환(平安丸)을 타고 상해로 건너갔으며, 이곳에서 강만(江灣)중학에 입학하여 학업을 계속하였다. 1934년 봄 중국군관학교 낙양(洛陽)분교에 입교하여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한국혁명군인회에 참가하였다. 1935년 4월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남경(南京)에서 조직된 조선민족 혁명당에 입당하였으며, 특수공작 임무를 띠고 북경·천진 지구로 파견되었다. 북경에서 오광선(吳光鮮)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다가, 1936년 5월 박태양(朴泰陽)·윤여복(尹汝福)·홍종민(洪鍾民) 등 동지들과 함께 천진(天津) 일본영사관 경찰에 체포되었다. 본국으로 압송된 그는 1936년 12월 14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났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