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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성내에 많은 비석이 있다. 하지만 안내판이 없으니 비석의 주인공이 공적이 있거나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한 것처럼 여길 수 있다. 비석군에는 친일행위가 있는 인사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정태석(鄭泰奭), 정상진(鄭相珍), 정봉욱(鄭奉郁)이다. 정태석(진사)은 지주로,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당시 진주 최고액 1만188원을 기부했고. 1938년 진주 유지들의 모임인 '연재계' 회장으로 300원의 국방성금을 헌납했으며, 1938년 <조선시보>에 '전승신년' 시국광고를 게재하고, 1935년과 1938년에 조선총독부로부터 상장을 받았다. 정상진(창씨명 烏川相珍)은 지주이면서 실업가로, 1935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시정 25주년 기념 민간공로자 표창으로 은잔을 하사받고,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5000원을 기부했으며, 1938년 3월 <조선시보>에 '황군 대승의 봄을 맞이하다'라는 제목의 시국광고를 게재했다. 또 그는 1939년 <매일신보>에 '황군의 무운을 바라는' 시국광고를 게재하고, 1939년 3월 26일 조선특별지원병 진주후원회 고문으로 선출됐다. 1940년 1월 1일 <매일신보>에 '축 황기 2600년 신춘'을 게재했고, 1940년 10월 조선총독부로부터 '합방 30주년 민간공로자 표창'을 받았으며, 1941년 <매일신보>에 '흥아유신'을 축하하는 시국광고 게재 등의 친일행위를 했다. 정봉욱은 1918~1930년 내동면장을 지냈고, 1921년 <매일신보> 주최로 일본 시찰을 다녀왔으며, 1933년 '기원절'에 일장기 게양을 독려하고, 1940년 '동아의 건설에 유도(儒道)정신을 발휘'라는 경남유도연합회 결성식에 진양군 대표로 참가했다.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쪽 3.1독립운동기념비 옆에는 '정표환(鄭杓煥) 시혜불망비'가 있다. 그는 지주로, 1914년 12월 조선총독부로부터 목배(木杯)와 밭 130평을 하사받았고, 1937년 중일전쟁 발발 후 비행기 '진주호' 헌납에 5000원을 기부하고. 1939년 1월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황군의 무운을 바라는' 시국광고를 게재했다. 이밖에 비석군에는 일제강점기 때 면장과 구장을 지낸 김종백(金鍾百) 면장, 정승주(鄭承周) 면장, 이○열(李○列) 평거구장의 비석도 있다. 출처 :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