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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만세지요하고 태극기 배부 후에 선창 만세하니 군중이 수반하여 고양 태극기하고 봉기 합창불절하다. 차제에 조선독립신문과 국민회보와 독립선언서를 살포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기직후 왜경에게 체포되어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죄목으로 징역 1년형이 판결되어 공주감옥소에서 복역하였다. 1921년에 행적을 은익하고 만주지방에 암입 독립군과 합세하여 구국운동에 전념하였고 노년에 환기 고향하여 세사를 개탄하고 함구 양농하며 초근목피로 호구연명하였으니 가지기의절야라. 광복 직후 3.1절 기념행사에서 독립유공자로 표창장을 수하였다. 1952년 임진 5월 10일 졸하니 수는 71이라. 형귀둔수이나 애국충절은 세세유전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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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애국충정을 가상하여 1986년 12월 16일 대통령 각하께서 독립유공훈장을 추서하시니 필시 유공 즉 유상야라. 보훈청에서 의사묘소에 석물 수립건을 지시하고 기 대금을 보조함에 종문이 협력하여 치석각자하고 묘정에 수립하니 손문의 영달이요. 호남의 영광이라. 직가위승사야라. 위선자는 천보지이복이라 하니 공자의 교훈이 어사에 입증이라. 서기 1987년 9월 일 국회의원 조남조 근찬 족손 헌영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