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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증언을 모으고, 함께 번역하며 기억을 전승하다 “단순한 유언으로 사람들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 경찰의 통보가 조선인과 중국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감을 부채질한 것이다. 눈사태로 번진 자경단의 광란은 경찰의 제지를 무시한 대학살로 번졌다. 일본 근대사상 최대의 학살사건이지만 100주년을 맞은 지금도 정부에 의한 진상규명은 미흡하다.” - 구와노 야스오 (鍬野保雄, 니코리회 대표) “'유언비어가 사실일까?'라고 주위 사람들과 논쟁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 사람이나 중국 사람도 똑같은 인간이고 똑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왜 떠오르지 않았는가. 이것이 일본인인가? 이 증언집을 읽으면서 왜 우리 일본인들은 이러한 잔혹한 처사를 부정할 힘을 가질 수 없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기무라 히데토 (木村英人, 한일평화활동가) “자경단은 민간인으로 구성되었는데, 군대와 경찰보다 더 악독했음을 알 수 있다. 어째서 이런 인도(人道)에 어긋나는 짓을 할 수 있었던가. 이 시기에는 대다수의 일본인이 민족 차별주의자였기 때문에 이 자들은 군의 명령이 없었어도 조선인을 학살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도 실제로 재일 동포에 대해 차별이 존재한다.” - 김병진(『지쿠호오 이야기』 번역자) “일본에서의 조선을 지우려는 역사(歷史戰)에 희생자들인 민중은 오히려 지워지기 쉽고 더욱 힘든 현실로 이끈다. 그래서 과거의 지워져가는 역사를, 그 당시 끊어졌던 민중의 손으로 다시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연구와 증언과 자료들에 대한 발굴이 있어야 한다.” - 오은정 (한일평화활동가) “평상시에는 사무원, 옷가게 점원, 신문배달원, 노동자인 사람들이, 때로는 친절하고 자상한 이웃이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직접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야기에 휘말려 목도를 꽂고 죽창을 휘둘렀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성실하게! 해낸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성!실!하!게!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며 자신들에게 닥친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이제는 그 학살을 조장하고 방치한 일본의 국가 권력과, 그것에 동조해 학살에 참여한 이들 스스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답해야 할 때이다.” - 이두희(한일평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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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関東大震災 간토대지진이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도쿄(東京府), 가나가와(神奈川)현, 지바(千葉)현, 사이타마(埼玉)현, 이바라키(茨城)현, 시즈오카(静岡)현, 야마나시山梨현 1부府 6현(縣)에 발생한 대지진을 말한다. 지진과 더불어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 것은 바로 화재였다. 지진이 발생한 시간은 점심을 준비하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집집마다 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지진으로 인해 건물들이 무너지자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도쿄시청이 발간한 『東京震災錄』에 따르면 당시의 피해는 이재자(羅災者) 약 340만 명, 사망자 9만 1344명, 행방불명 1만 3275명, 중상 1만 6514명, 경상 3만 5560명, 전소(全) 38만 1090세대, 전(全) 8만 3819세대, 반(半壞) 9만 1232세대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