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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광복을 위하여 삭풍이 몰아치는 만주벌판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난과 역경과 형극의 길을 무릅쓰고 독립운동에 생애를 바쳐 역사상에 큰 자취를 남긴 애국지사가 있으니 이는 중산 최명수 선생이시다. 일찌기 고종 18년 1881년 청원 대율리에서 최병옥의 3남으로 태어나니 자는 장보 호는 중산 본관은 전주이며 명문출신으로서 영의정 지천 최명길 선생의 11세손이다. 한말의 국운이 어지러워지매 뜻한 바 있어 기독교에 입교하여 1907년 목천 장로교회의 창립 전도사로 선교활동을 통하여 독립운동에 눈을 뜨고 청년강습소를 열어 청소년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여 유석 조병옥 선생과 같은 인재도 길러냈다. 이해 정미 7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어 국운이 극도로 악화되어 가고 1910년에는 한일합방이 되자 망국의 통분을 품고 독립운동에 뜻을 세워 만주로 망명하였다. 선생의 광복운동을 위한 파란많은 망명생활은 남만주를 무대로 시작되었으니 1914년 요령성 류하현, 삼원보를 중심으로 김동삼 선생 등 70여명의 동지들과 경학사의 정신을 계승한 교포들의 자치기관으로 공리회를 조직하고 사판의 직책을 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