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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조선의용대의 한국광복군 합류 39 2000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한국근대사(독립운동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한국광복군』(독립기념관, 2007), 『근현대 중국관내 지 역 한인사 연구』(경인문화사, 2015), 『근현대 상해 한인사 연구』(경인문화사, 2018) 등이 있다. 2021년 제17회 독립기념관 학술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 3월부 터  2025년 6월까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으로 재직하였다. 필자 김광재 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되어 갔다.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합류는 임시정 부의 국제적 위상 및 외교역량의 강화 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단일 지 휘체계 아래 결속된 통일무력을 거느리 고 있음으로써 임시정부의 대외적 위상 은 훨씬 높아졌다. 그에 따라 중국정부 나 여타 연합국 정부들에 대한 발언권이 강화될 수 있었다. 특히 1943년에는 조 선의용대 출신 대원들을 선발대로 한 광 복군 인면전구(印緬戰區)공작대를 파견하여 영국군 과 공동작전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광복군과 임시정 부의 위상을 드높혔다. 나아가 임시정부가 연합전선정부를 지향하게 되 는데 지렛대 역할을 해주었다. 1942년 조선의용대 는 광복군에 합류할 때 군사통일과 아울러 정치통일 이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였다. 우선은 임시의회를 소집하여 결원을 보선할 것을 요구했다. 임시정부는 이에 응하여 한국독립당이 아닌 좌익진영 인사들도 임시의정원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 결과 같은 해 10월 하순에 9명의 조선민족 혁명 당 인사들이 임시의정원 의원에 당선되었다. 이로써 민족혁명당이 처음으로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되었 고, 임시의정원은 통일의회로 개편될 수 있었다. 요 컨대 1942년 조선의용대의 광복군 합류는 관내지역 무장단체의 군사통합에서 더나아가 임시정부가 연 합전선정부로 발전하는 정치통합을 이루는데 중요 한 촉진제로 작용하였다. 한국광복군 제1지대 본부 요원들(이상 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