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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구항면 대정리 마재마을에는 ‘안둥지’ 라는 지명이 전해오고 있다. 이곳은 광천읍과 구항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기산(해발 320m) 동쪽 산줄기 끝부분이다. 옛날 지기산 기슭인 마재마을에서 은하면 장곡리 월곡마을로 넘나들던 길목 부근이다.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에 마재마을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은 독립운동가 서은모(徐殷模) 선생이다. 당시에 서은모 선생은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안둥지 계곡에 30여 평의 넓고 깊은 구덩이를 파놓았다. 이곳에서 주민들과 독립만세운동을 모의하고 주변 지역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며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에는 안둥지 구덩이로 들어와 숨어 있었다. 당시에 만세운동을 펼치며 이웃끼리 사용하던 암호가 ‘안둥지’였다. 안둥지라는 암호가 전달되면 마을사람들은 구덩이 안으로 달려와서 만세운동을 모의했다. 그 당시에 사용하던 ‘안둥지’라는 암호는, 이후로 이곳 산 계곡의 지명으로 굳어졌다. 일본경찰은 만세운동에 참가한 마을주민과 모의장소를 찾기 위해 마재마을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마을주민들은 일본경찰의 협박을 받으면서도 만세운동 참가자와 안둥지를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 일본경찰은 마을사람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던 상황에서 어린아이들에게 사탕을 사주며 모의장소를 물었다. 결국 10살짜리 어린아이 한 명이 사탕 몇 개에 일본경찰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어른들이 들락거리던 안둥지를 가르쳐주는 바람에 비밀장소가 탄로 나고 말았다. 일본경찰의 꾐에 넘어갔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마을사람들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이후 안둥지는 더 이상 독립운동의 비밀장소로 사용할 수 없었다. 일본경찰의 집요한 추적에 마을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이 서은모 선생이라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해방후에 안둥지 벙커는 아무런 보전대책도 없이 그대로 방치되었다. 나무꾼들이 쉬어가는 장소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노름꾼들이 비밀리에 노름장소로 이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아예 안둥지 벙커가 사라지고 없다. 이 자리에는 2011년에 고압선 송전탑이 설치되었다. 출처 : 홍성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