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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전투 1 '서울 북쪽의 아마겟돈' 그들의 어깨는 하늘을 지고 있었다. A.E. 하우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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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해전술' : 중공군 최대 규모의 공격 1951년 4월 22일 일요일, 영국-벨기에 제29보병여단이 전략적 요충지인 임진강 남쪽, 서울 바로 북쪽에 배치되었습니다. 1950/51년 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하늘은 맑았고, 사방은 봄의 색으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전투는 소강상태였고 적들은 철수했습니다. 전진을 예상했던 여단은 임진 고지에서 임시적인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4월 23일 영국의 국경일인 성 조지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맥주를 준비했고 몇몇 이들은 전쟁이 끝난건지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어러한 느슨한 태세는 끔찍한 실수였습니다. 사실 중국은 최대 규모의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34만명의 대군이 35마일 전선을 따라 공격한 후, 임진강과 가평계곡을 돌파하며, 한국 내 배치된 미군 주력을 포위 및 파괴하고, 메이데이(5월1일)까지 서울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취약한 임진강 지역에서 제29보병여단은 두 개이 주요 도로를 점령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가장 큰 타격이 가해질 예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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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산 제29보병여단은 각 600여명으로 이루어진 4개 보병대대로 구성되었습니다: 글로스터 제1대대(이하 그로스터대대). 노섬벌랜드 푸질리어 제1대대(이하 푸질리어대대), 왕립 얼스터 소총제1대대(이하 얼스터대대), 벨기에 보병대대(이하 벨기에대대). 그들은 왕립 제8 아일랜드 후사르 전차대대(이하 영국 전차대대)의 센추리온 전차, 제45야전왕립연대의 포병대대(이하 영국 포병대대), 제55야전공대대(이하 영국 공병대대)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여단에 맞서, 중공군은 제63군을 배치했습니다. 한국에 막 도착한 해당부대는 27개의 보병대대로 구성됐습니다. 제29보병여단은 1명 당 7명의 중공군과 맞서게 되었습니다. 4월 22일 일요일 낮 순찰대는 임진강 북쪽에서 움직임을 포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보름달이 뜬 짙은 밤에 일어날 폭풍에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수의 교차 지점에서 중공군 대대는 얕은 강을 건너 앞으로 돌진했습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