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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계(金在桂)는 전라남도 장흥(長興)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천도교(天道敎)의 장흥 교구장(敎區長)으로 있으면서 교주 손병희(孫秉熙)의 지시에 따라 서울로 독립운동성금 5백원을 가져가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서 인접 교구에 보내었으며, 면 별로 만세시위운동을 조직화하여 3월 15일 장흥군의 독립만세운동을 총지휘하였다.
3·1운동 후에는 천도교 중앙총본부의 금융관장(金融觀長)이 되었으며, 1936년에는 대도주(大道主) 박인호(朴寅浩)가 1936년 8월 14일 지일기념일(地日紀念日 ; 동학 2세 교주 최시형의 승통기념일)을 계기로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뜻에 따라 교인들로 하여금 아침저녁 식고(食告)할 때마다 일본의 멸망을 기원하는 특별기도를 실시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다른 중앙간부들과 함께 전국 교도로 하여금 안심가(安心歌)의 한 구절인 「개 같은 왜적 놈을 한울님께 조화받아 일야간(一夜間)에 소멸하고 전지무궁(傳之無窮)하여 놓고 대보단(大報壇)에 맹세하고 한(汗)의 원수 갚아보세」를 암송하며 「멸왜기도(滅倭祈禱)」를 드릴 것을 지시하여 이를 실시하였다. 1937년 7월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이것이 국권회복의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보고 중앙간부들과 함께 전국을 4개 구역으로 나누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멸왜기도」를 실시하다가, 1938년 2월에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일제는 중일전쟁 수행상 사건을 확대하는 것이 불리하다고 판단하여 70일만에 그를 기소유예로 석방했으나, 잔혹한 고문의 여독으로 석방되자 얼마 후에 바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부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