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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바 마고메 위령원의 "관동대진재희생동포위령비“ 후나바시 자경단에 의한 조선인 학살과 관련해서는 9월 4일과 5일 양일에 걸쳐 5건의 기록이 남아 있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총 55명의 조선인이 희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매서운 정세 속에서 동포들이 모여 두 차례 추모·공양을 하였으나, 관헌의 엄격한 통제 탓에 그 후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추모 행사를 치르지 못했다. 전쟁 동안 희생이 극히 많았던 후나바시에서 전후 이 학살의 진상과 진실 그리고 그 교훈을 후세에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재 일본조선인연맹 지바현 후나바시지부와 후나바시를 중심으로한 지역 동포들 이 힘을 합쳐 십시일반 돈을 모아 희생 동포를 위한 위령비 건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학살된 조선인이 소각되어 버려진 화장장 부지 [현재 후나바 시시 기타모토마치(北本町)의 구 후나바시 화장장-〉아사히글라스공장 옛터]에 3·1인민봉기 28주년을 기념하여 위령비를 건립하였다. 총련 서부지부의 재일조선인은 1947년부터 매년 거르지 않고 9월에 일본 각계 인사들과 함께 추도식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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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내용 서기 1923년 9월, 일본 관동지방의 대지진 당시 군벌관료는 혼란 중에 이재로 신음하는 인민대중의 폭동화를 우려하여, 자기계급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진보적인 인민 해방지도자와 소수 이민족에게 전가시키고, 이것을 억압·말살함으로써 군부독재를 확립하려고 음모하였다. 당시 야마모토 군벌내각은 계엄령을 시행하고, 사회주의자와 조선인들이 공모하여 폭동을 계획 중이라는 근거 없는 말로 재향군인과 어리석은 민중 을 선동·교사하여 사회주의자와 우리 동포를 학살하게 하였다. 재류 동포 중, 이 흉악한 만행의 피살자는 6천 3백여 명을 헤아리고 부상자는 수 만에 달하니, 그 희생동포의 원한은 실로 천추불멸할 것이다. 그러나 해방된 우리는 세계민주세력과 제휴하여 국내 및 해외의 국수적인 군국주의의 반동 잔재 세력을 박멸하고, 진정한 민주조선을 건설하고 세계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숙원설욕하도록 적극 투쟁할 것을 맹세하며, 희생자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에 작은 비를 건립함. 재일조선인연맹 중앙총본부 위원장 윤근 소재지 | 후나바시시 마고메초 1216 후나바시시 시영 마고메 영원(내 건립일 | 1947년 3월 1일 건립자 | 재일본조선인연맹 지바현 본부, 후나바시 지부, 후나바시를 중심으로한 지역 동포들 크기 | 비 세로 301cm, 가로 130cm, 폭 17cm 대좌 | 세로 86cm 가로 160cm 비문 | 정면 - 서기 1947년 3·1혁명기념일 준성(西紀 1947年 3·1革命記念日竣成) 관동대지진 희생동포 위령비(關東大震災犧牲者慰靈碑) 재일본조선인연맹 지바현 본부 건지(在日本朝鮮人連盟千葉県本部 建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