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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5년 10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을미사변(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을 다시 본다’ 우선 사바찐은 사건을 둘러싼 인물의 이름을 구체 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한 러시아공사 베베르(К.И. Вебер)는 사바찐에게 을미사변에 가담 한 일본인의 이름을 강하게 추궁했다. 베베르는 사 바찐이 더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자 사바찐에 대한 의혹을 품었다. 진실의 추구란 ‘프리즘’을 투영하는 것과 같다. 의 식 속에서 여러가지 색깔을 일곱 가지 원색으로 분 해해서 그 하나하나를 분석해야 한다. 사바찐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새벽 5시 45분 건청 궁을 출발했다. 사바찐은 정동(貞洞) 소재 러시아공 사관에 6시 30분 도착해서, 베베르 공사와 슈테인 서기관에게 자신이 목격한 것을 증언했다. 아무리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건청궁에서 광화문 까지 15분, 광화문에서 정동 러시아공사관까지는 15분 정도가 소요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던 사바 찐이 발걸음을 늦췄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사바찐은 새벽 5시 45분이 아니라 6시에 건청궁을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 5시 45분에서 6시 사이는 왕비가 암 살되었던 시점이다. 또 다른 사실은 전 군부고문 오카모토[岡本柳之助] 가 사바찐의 변명을 너무 쉽게 믿었고, 유럽인 사바 찐을 곤녕합(坤寧合) 현장에 방치했다는 점이다. 사 바찐의 증언과 보고서, 러시아와 일본 외교문서 등 을 살펴보면 사바찐이 일본인에 의해 건청궁 내부에 구금되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합의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사실 사바찐이 그토록 감추려고 했던 인물은 일본자 객의 총지휘자인 오카모토였다. 사바찐은 오카모토 가 드러나면 자신과 오카모토와의 의혹이 제기될 것 관문각(뒤)과 옥호루 옥호루 전경(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세레진 사바찐(1860~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