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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5년 9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중국 관내 항일무장조직 조선의용대의 재조명’ 지대본부는 충칭에 설치하였다. 조선의용대는 1940년 3월 그 대본부가 충칭에 정착한 이래 조선민 족혁명당,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등과 함께 충칭시 남안의 손가화원(孫家花園)에 머물고 있었다. 조선의 용대가 광복군 제1지대로 개편된 후, 제1지대는 손 가화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탄자석의 2층집으 로 옮겼다. 지대본부는 충칭에 주재하고 있던 조선의용대 대 원들을 중심으로 하여 편성되었다. 조 선 의용대가 광복군 제1지대로 개편할 당 시의 편제가 사실상 지대본부였다. 지대 장 김원봉을 중심으로 하여, 지대의 제 반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총무조와 대원 들을 한데 묶은 분대로 그 편제가 갖추 어졌다. 한국광복군 합류의 영향과 의의 1942년 5월에서 7월에 걸쳐 조선의 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합류함으로써 임 시정부와 그 산하의 광복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의용대는 광복군에 합류하 기 이전인 1942년 3·1절을 맞아 임시정 부야말로 “해외 조선혁명의 최고통일기 구, 최고지휘부”가 되어야 한다고 천명 한 바 있었다. 우선 광복군의 병력과 전력이 크게 강 화되었다. 광복군은 창립 당초 1년 이내 3개 사단의 편성을 목표로 하여 3개 지 대로 편제되었으나, 인원 부족으로 초모 공작을 수행해야만 하였다. 그런 상황에 서 조선의용대 대원들이 편입, 합류함에 따라 광복 군은 상당한 정도로 병력이 증강되었다. 합류되어 온 대원들 중에는 다양한 유형의 대적공 작 경험을 보유한 인재들이 적지 않아서, 광복군이 정보전, 심리전, 유격전 등을 추진하는데 기반이 되 었다. 또한 조선의용대가 구축해 놓은 공작거점을 인수한 광복군은 활동영역의 확대도 기할 수 있었 다. 광복군은 조선의용대의 합류 이후 중국내 무장 훈련중인 조선의용대 대원들(KRpia 제공)  한국광복군 제1지대 본부 터(중경 탄자석 대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