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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5년 3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3 · 1운동의 지역적 전개 양상과 특징 ②’ 그리고 3월 31일부터 4월 4일까지 5일 동안이 각도 의 독립만세운동이 가장 활발히 전개된 시기였다. 예외에 평안남도는 3월 6일 19회, 황해도는 4월 7일 19회, 강원도는 4월 8일 13회이다. 손 있는 자 박수치고, 입 있는자 만세를 외치다 1919년 2월 하순 수원 삼일학교 김세환이 기독교 측 동지를 규합하러 충청도에 파견됐다. 그는 서산 읍내 목사 김병제를 만나고 2월 24일 상경하였지만 독립선언의 추진세력과 연계되지 않았다. 또한 2월 28일부터 배부된 ‘선언서’ 가운데 천도교측 인종익 이 전북 전주에 교부하고 충북 청주에 전달하려다가 체포됐다. 그러나 3월 2일 전북 함열에서 민영순이 충남 논산 천도교구실에 교부한 선언서는 이어 부여 천도교구실에 전달되어 3월 3일 새벽 사이에 논산과 부여에 배포됐다. 하지만 타 지역과 달리 독립만세 를 외치는 독립운동은 실행되지 않았다. 충남지방에서 3 · 1독립운동은 예산 3월 3일, 부여 3.6, 서천 3.8, 논산·당진 3.10, 아산 3.12, 연기(세종) 3.13, 천안 3.14, 공주 3.14, 대전 3.16, 서산 3.24, 홍성 4.1, 청양 4.5, 충북지방은 괴산 3.19, 옥천·음 성 3.28, 영동 3.29, 청주 3.30, 충주 4.1, 진천 4.2, 보은 4.3, 제천 4월 17일에 각 지역에서 최초 의 독립만세운 동 이 전 개 됐 다. 충남은 4 월 12일 논산 벌곡에서, 충 북은 4월 19일 제천 송학에서 마지막 독립만 세를 외쳤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용운 등 29인이 모여 독립선언식을  진행했던 태화관 전경(옛 순화궁, 독립기념관 제공). 천도교측 대표로 3 · 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1861~1922, 독립기념 관 제공). 3 · 1운동 거사 전날인 1919년 2월 28일 서로 안면을 익 히고 다음날 독립선언식 절차를 최종 점검하기 위해 가회동에 있는  손병희의 집에 민족대표 24인과 함태영이 모였다. 이 자리에 참석 한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식 장소인 탑골공원에 학생들이 모이기 로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일의 사태를 우려해 급히 선언식 장 소를 인사동 명월관 지점 태화관으로 변경하였다. 그로 인해 거사  당일 일정에 다소의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