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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는 이념(理念)과 사상으로 무장한 독립투쟁을 위하여 각계의 혁신적인 대표들이 모여 양기탁(梁起鐸)을 위원장으로 하는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이 동년 4월 5일 길림성 영남(領南)호텔에서 조직되자, 그 중앙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조직 당시의 당원수는 약 1천 5백여 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기적인 항일투쟁은 2세 국민들의 교육밖에 없다고 판단한 그는 연길현(延吉縣)에 학교를 설립하고, 그 운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하여 1931년 4월 10일 주하현(珠河縣)으로 가서 최악(崔岳)·홍진(洪震)·신숙(申肅) 등을 만났다. 이때 공산주의로 전향한 최악(崔岳)은, 독립군의 호장군(虎將軍)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를 제거하도록 사주하여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노심초사하던 그는 공산계열의 동족인 일당에 의하여 이역 땅에서 무참한 최후를 마쳤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