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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추모비(현충시설 안내)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40-1-22(2003.9.) / 관리자 :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유족
강근호(姜槿虎:異名 姜華麟, 1898-1960) 지사는 함남 정평 출신으로 1916년 학생 소요사건으로 일본경찰에 수배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3·1만세운동 직후 무장독립군의 산실인 신흥(新興) 무관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6월 이장령(李章寧) 참모장과 함께 북로군정서에 부임하여 사관연성소 교관 및 구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10월 청산리전역(戰役)에서는 대한군정서 제1중대장으로 최전선에서 중대원을 지휘하여 역사에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그 후 1921년 5월 시베리아 흑하사변, 1922년 10월 고려혁명군 교관, 1926년부터 민족적 사회주의 독립운동 등으로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다가 만주에서 조국광복을 맞이하였다.
1947년에 귀국한 선생은 1949년 2월 52세의 나이로 육사(8기, 특별14차)에 입교, 장교(군 13193)가 되어 건군과 6·25를 거쳐 1956년 5월 제103사단 제118연대장(중령)으로 전역하였다. 1960년 2월 영도 영선동에서 63세로 작고한 선생의 유해(遺骸)는 1964년 이곳 장산으로 모셔왔다가 1990년 12월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인정하여 1977년 건국포장(제955호),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제103호)이 추서되었으며, 2000년 4월 육군 제53사단 장병일동은 선생의 유택지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
이름도 없이 사라졌던 선생의 애국혼은 2002년에 전기(傳記) 『만주벌의 이름없는 전사들』이 출판되어 비로소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추모비는 2003년 9월 국가현충시설로 지정되었으며, 평생을 항일독립운동과 진충보국(盡忠報國)에 받친 선생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자 2005년 4월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오늘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