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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박은 영남의 거유로서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으로부터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기 전 그가 별세할 때까지 13년 동안 전국 각지를 왕래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계속 송달해 주어 독립운동을 크게 고무 진작 시켰다. 이러한 재정적인 지원을 사례하고, 그의 자손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하여 1930년 12월 그가 별세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1931년에 이교재를 국내에 밀파하여 그를 애도하는 추조문과 특발문을 보냈다. 그러나 임시정부의 경상도 책임자로 임명되었던 이교재는 일경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이를 전달하지 못하고 자택 천장에 감추어 두었는데, 광복 후에야 발견하여 비로소 그의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그는 당시 영남지방의 유학자로서 한서만 1만여 권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인수문고목록을 펴내는 등 학문적으로 크게 기여하였는데 현재도 달성군 화원면 인흥촌의 수봉정사에는 만권당이라는 서고가 남아 있다. 임시정부에서 보내 온 특발문 즉 격문의 역문은 다음과 같다. "임시정부가 세워진지 13년이 됐지만, 아직도 우리가 독립하지 못한 것은 일제의 탄압 때문이다. 우리 임시정부가 세워진 것은 동양평화와 유신을 크게 내세워 세계평화를 유지하는데 기여하기 위해서이다. 고인이 이러한 임시정부를 돕기 위해 의연금을 보내 주어 무궁한 국가발전에 밑거름이 된 것을 감사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인정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