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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를 가르치고 이를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다. 1907년 정미칠조약이 맺어쳐 일본의 침략정책이 노골화하자 李康年(이강년)과 영춘에서 의병을 일으켜 호서창의대장 李康年(이강년) 휘하에서 군사장으로 활약하여 충주를 공략하고 청풍 한수 단양으로 거쳐 문경 갈평에서 적을 격파하니 적의 시체가 산과 들에 즐비하였고 많은 무기를 노획하여 그 위세는 크게 승천하였다. 그러나 1908년 6월 금수산 작성싸움에서 李康年(이강년) 의병장이 부상을 입고 왜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하니 대장을 잃은 의병진은 약화되고 오래지 않아 해산될 수 밖에 없는 처지에서 후일의 재기를 기약할 뿐이었다. 1913년 그는 옛동지를 규합하여 비밀결사민단 조합을 조직하고 무기를 갖추어 영월 원주 안동 등지를 전전하여 군자금을 마련하고 재기를 추진하던 중 체포되어 1915년 7월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경성감옥에서 복역 중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신병을 얻어 1919년 9월 8일 향년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