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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과 유엔군은 오산-원주 선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저지하고 1951년 2월 하순에 반격을 개시하여 3월 14일에 수도 서울을 재탈환하고, 중부전선에서는 홍천을 점령한 뒤 38도선을 돌파하기 위해 북진중에 있었다.
해병대 제1연대(연대장 대령 김성은)는 영덕, 영주, 영월지구에서 적을 격퇴하면서 전진을 계속하여 경춘가도까지 진출한 해병대는 3월 16일 제3군단 지역을 떠나 제9군단 미 해병대 제1사단에 배속되어 3월 17일 18:00시 평창군 차항리를 출발, 3월 18일 17:00시 홍천에 도착하였고, 19일에는 전 부대가 구성포에 집결하였다.
홍천지구에서 해병대 제1연대에 부여된 임무는 일대에서 가장 험준한 가리산을 공격, 탈환함으로써 우군이 북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가리산은 홍천,춘천,인제를 잇는 삼각형의 중간에 있는 1051고지 군으로 이 고지를 탕활하면 인제와 춘천을 감제할 수 있는 전력요충지로 적은 이 가리산 일대에 최강 부대인 인민군 제6사단 1,500여 명으로 방어하고 있었다.
한편, 해병대 제1연대는 가리산을 탈환하기 위하여 3월 19일 야간 '물새터'에 연대 지휘소를 설치하고, 제2대대(대대장 중령 염봉생)는 우, 제3대대(대대장 소령 김용국)는 좌, 제1대대(대대장 소령 공정식)를 예비로하여 공격작전을 감행하였다.
1) 3월 20일부터 공격을 개시하여 제2대대는 454고지에 제3대대는 목표 12,14까지 진출하였고
2) 3월 21일 08:00시를 기하여 화력 지원하에 제2대대가 목표 7,8을 제3대대가 목표 17,18을 각각 탈환하였다. 제9중대는 공격중 목표 16에서 적30여명과 치열한 전투끝에 목표 탈환에에 성공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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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월 22일 제2대대는 가리산 일대의 고지 중 가장 난공지대인 M지대와 중간목표 11인 710고지를 탈환하고, 제3대대는 K지구 일대를 탈환하였다. 3월 22일 야음을 이용하여 적은 975고지(M지대)에서 제2대대 진지인 710고지를 기습공격하여왔으나,
4) 3월 23일 02:00시 제2대대는 공격해 오는 적을 격퇴한 후 적의 주 본거지인 M지구 일대에서 맹렬한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적 최강 부대인 속칭 흑룡강부대의 강력한 저항 속에 3월 24일 M지구 탈환에 성공하였다.
5) 3월 25일 최종목표인 가리산 공격은 연대 예비대대였던 제1대대가 맡아 08:00시에 공격을 개시하였고, 이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적은 도주하기 시작하였고 13:00시 가리산 모든 고지를 탈환하였다.
이처럼 해병대 제1연대는 1951년 3월19일부터 3월 25일까지 7일동안 치열한 주.야간 공격을 통하여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Ripper) 작전시 미 제9군단 진격의 걸림돌인 가리산을 점령함으로써 우군의 중부전선 돌파구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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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