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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기업가, 독립운동가 유일한(柳一韓)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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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박사公(개명前 柳一馨)은 부친 유기연 선생이 생업과 독립운동으로 외지에 정착 초기인 甲午年(음력 1894. 12. 13. 양력 1895.1.15.)에 태어나셨다. 그 뿌리는 아버지가 자라신 여기 예천에 있고, 그 삶의 행적도 부친을 빼닮아 기업가, 독립운동가, 교육자이며, 각 분야에서도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 모범적인 업적을 이루신, 국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 시대의 최고 명사이다. <b>어려서부터 애국애족이 충만한 독립운동가</b> 公께서는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국가관과 세계관, 독립정신을 배운 후, 큰 세상을 경험하고 국가의 큰 일꾼이 되라는 아버지의 일념으로, 1904년 9살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힘든 타국 생활을 하셨다. 당시 재미 항일운동가 박용만이 운영하던 네브라스카州의 헤이스팅스 소년병학교를 다니며, 독립전사로 성장하시게 된다. 이 즈음 유일한으로 개명도 하셨고, 미시건 대학교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하며 훗날 초우량 대기업 창업의 기초를 닦았다. 公께서는 이미 대학생 시절부터 선배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박사, 이승만 박사와 교류하며 독립운동을 시작하셨고, 삼일운동 후속으로 1919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 그분들과 함께 재미 한인 자유대회를 주최하여, 독립성명서를 직접 작성하고, 제일 먼저 서명, 낭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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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미국에서 먼저 성공한 사업, 고국에서는 최고의 민족 기업가</b> 公께서는 학업 후 당대 최고 기업인 GE社에서 직장경험을 쌓고, 독립운동과 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에서 먼저 사업을 시작하셨다. La Choy Inc. 식품회사를 차려, 신개발품인 숙주나물 통조림의 첫 사업에서 일약 대성공을 거두시고, 미국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과 유학생들에게 많은 재정적 지원을 하셨다. 이어 서재필 박사를 대표이사로 柳韓주식회사를 필라델피아에 설립하여, 사업과 독립운동을 병행하였는데, 당시 國父와도 같았던 서재필 박사에게 여생 동안 생활비와 활동자금을 지원한 장본인이셨다. 公께서는 1925년 20년 만의 고국 방문에서, 의약품 부족과 낙후된 의료 현실 하에, 일제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과 기업발전의 절실함을 느끼고, 에비슨 연희전문 학교장으로부터 상학과 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 사양하고, 사업의 의지를 굳혔다. 이듬해 드디어 금의환향하시어 유한양행을 설립하신바, 금년 2026년이 창립 100주년이 된다. 同 창업은 내국인이 해외에서 번 자금을 사업화한 국내 최초의 해외 직접투자 유입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