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page


37page

1908년 10월 9일과 20일 자 《대한매일신보》에 보도되었다. 이에 따르면 1908년 음력 8월 16일에 시천교인들이 이곳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태인군 행단리 주막에서 유숙하였는데, 일본 군사가 이들을 의병으로 오인(誤認) 사살하여 33명 중 21명이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자 1908년 10월 23일에 장교[대위] 한 명을 사고 현장에 급파(急派)하였다. 조사 결과, 피해자들은 임실(任實), 순창(淳昌), 태인(泰仁) 등지의 시천교 교도들로 확인되었다. 그들은 태인군 용산면 화호리(禾湖理)에서 시천교 지도급 인사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날이 저물어 태인군 행단리 주막에서 투숙했다가 예기치 못한 참변을 당하게 되었다 출처 : 대순진리회 대순회보 : 1908년 태인 행단에서 발생한 일진회원 관련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