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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충청도 3 · 1독립운동의 전개와 특성 37 한국독립운동시대를 열다 올해는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 명의로 ‘선언서(宣言書)’를 발 표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독 립운동을 시작한 지 106주년 해이 다. 19세기 후반 아시아에서 제국 주의 국가 대열에 마지막으로 합류 한 일본은 국가 발전의 최우선 정 책으로 대외침략을 추진했다. 일본 에 강압적 개항을 당한 한민족은 서 세동점(西勢東漸)의 외세 침략을 막 아야 했고, 근대국가로의 발전을 이 룩해야 했다. 하지만 제국주의 국가 의 침탈과 비호 하에 대한제국은 국 력이 무력화(無力化)되고 1910년  일제에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 했다. 이로부터 한국독립운동시대 (1910.8.29~1945.8.15)가 시작됐 다. 국권을 침탈당한 지 3,107일, 8 년 6개월만인 1919년 3월 1일 한민 족은 ‘우리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 인은 자유민임을 선언’하는 독립운동 을 전개했다.  대한독립만세, 삼천리 강산으로 퍼지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명월관지점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가 독 립선언식을 거행했다. 2시 30분에는 파고다공원에서 학생과 시민 군 중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 조선독립만세 등을 연호하며 공원을 나와 동서로 나뉘어졌다. 이어 서울 시내를 해질 무렵까지 활보 하는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밤에는 경기 고양의 양화진과 신촌리 연희전문학교 부근에서 독립만세 함성이 울려퍼졌다. 한편 지방에서도 황해도 해주, 평안남도의 평양·진남포·안주, 평안북도 선천·의주 · 신의 주, 함경남도 원산 등지에서 교인이나 지역민들이 12시경 고종의 봉도 식(奉禱式)을 거행하고 이어 독립선언식을 하거나 독립선언서를 배포 낭독하며 독립만세를 연호하는 3 · 1독립운동이 시작됐다. 이어 3월 2일 황해 해주와 수안, 3일 충남 예산과 경남 마산, 5일 전 북 군산, 3월 8일 경북 대구, 3월 10일 강원 철원과 전남 광주 및 담양, 3월 19일 충북 괴산에서 각 도(道)에서 최초의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 다. 3월 3일 고종의 국장례를 참례하기 위해 상경한 지방 인사들이 귀 향하면서 서울의 독립선언과 독립만세를 지방에 전했다. 또한 3월 6일 조선총독부의 보도 금지 해제로 3월 7일자 신문부터 ‘소요사건’으로 보 도되어 신문 보급 지역과 구독자들에게 알려졌다. 3월 10일 경성의 ‘휴 교령’으로 귀향한 학생들도 친인척이나 동년배 및 지역 인사들에게 서 울의 독립운동 상황을 전했다. 경성–지방을 왕래한 인사들이나 지방의 지역간 교류 및 장시(場市) 등을 통한 왕래로 전국 각지로 3 · 1독립운동 은 전파됐다. 지방 3 · 1독립운동은 3월 10일 전후에는 민족대표들의 종교 조직과 연계되어 독립만세를 사전에 준비하거나 독립선언서가 전달된 지방 인 평남도를 중심으로 황해도와 함경도 및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에서 독립만세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이어 20일 전후에는 충청남도와 경 상도로 독립만세 전개지의 중심이 이동했다. 3월 하순에 이르러 독립 운동이 대중화·일반화가 되어 3월 26일 이후부터는 전국 13도 가운데 10~11개도에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이 시기에 경기도 에서는 1일에 적게는 22회, 많게는 33회의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