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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석 (당시48세) 1923년 8월 16일 출생 1961년 신민당 충남도당 부위원장, 금산지구당 위원장 역임 1971년 신민당 금산지구당 위원장, 국회의원 선거 입후보 1971년 4월 27일 집에서 나간 후 행방불명 1971년 4월30일 금산읍 양지리 뒷산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채 발견 |7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박정희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61년부터 계속하여 신민당 충남도당 부위원장과 금산면 지구당 위원 장을 역임하면서 3선 개헌 반대 운동 및 유신에 맞서 대통령 선거 시 야당 후보 지원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러던 ’71년 동지는 신민당 금산지구당 위 원장으로서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하여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선 거운동을 하던 4월 27일 집에서 나간 후 행방불명되었고, 이후 30일 금산읍 양지 리 뒷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경찰은 지구당내 심한 갈등과 중앙당의 공천 교체 움직임으로 인한 좌절 감에 사로 잡혀 면도칼로 배를 잘라 할복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종결하 였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당시 경찰에서 야당 당원들을 감시하였고, 중앙정보부 요 원 및 보안사 요원들도 상주해서 야당의 선거운동을 탄압했다고 주장하고, 양상 석씨의 죽음은 여당이나 경찰 등 권력기관에 의한 죽음이라고 주장하였다. 의문사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당시 경찰에서 야당 당원들을 감시하고, 또한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요원들이 상주하여 야당의 선거운동을 감시한 것으로 드러 났다. 또한 수사과정에서 3일간의 행불 기간의 행적 등 주변 정황에 대한 조사를 소홀히 했으며, 하루 만에 회신된 필적감정 결과와 부검소견, 몇몇 참고인의 진 술만을 기초로 3일 만에 자살로 단정 짓고 신속히 결과를 발표했던 것이 드러났 다. 또한 당시 국회의원 공천 과정과 금산지구당 위원장직 수행 과정에서 신민당 유진산 계열의 반발과 비협조를 받은 것으로 파악되었다. 의문사위원회는 이런 졸속 수사와 주변정황, 또한 법의학자의 견해 등 여러 가 지 상황과 증거 등을 종합했으나, 오랜 시간이 지났고, 또한 국가정보원의 비협 조로 인해 진상을 밝히지 못하였다. 끝내살리라 |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