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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우리들의 삶은 정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어렵고 힘든 일을 도맡 아 하였고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려고 노력했다. 참된 삶과 주인 된 삶에 항상 고민하며 참교육을 갈망하는 예비교사로서 잘못되어가고 있는 초 등교육을 바로 잡고자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투쟁했다. 동지는 전남 해남 출생으로 ’90년 광주교대 사회교육과에 입학하여 노래패 활 동을 하면서 교원종합대책안 분쇄를 위한 1학년 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그 리고 ’92년에는 사회교육과 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교원종합대책안 분쇄를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던 동지는 ’93년 초등 교육 개혁과 교대 교육정상화를 위한 4학년 대책위 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금식을 하고 임용고시 반대투쟁 승리의 염원을 담은 종이학을 접는 등 계속적인 투쟁을 하다가 ’93년 11월 10일 10시경에 분신하여 전신 3도 화상과 내출혈로 전대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운명하였다. 우리에겐꿈이있잖아요. 정의는승리한다고하였습니다. 우리는초등교육의발전이있기를원합니다. 새시대를짊어지고나갈똑똑하고바른일꾼들 을길러내고자합니다. 이나라발전의초석이되고자합니다. 우리는우리의소중한사랑공동 체를지켜내고더욱더아름답게가꾸고자합니다. 사랑을알고체험해야사랑을나누고가르칠 수있습니다. 우리가외치는건집단이기주의가아닙니다. 우리가올바로서야만이교육이올 바로서고이나라가올바로설수있습니다. 너무도부족한저는참으로많은사람들에게사랑을받은것같습니다. 이많은사랑에보답 할수있는길을찾았습니다. 가장필요한곳에서나의온정성과온마음을드리고싶습니다. 많은학우들의도움으로우리소망을담아학을접었습니다. 항시우리네소망잃지말고힘있 게살아나갑시다. 그리고제가못한꿈여러분따뜻한마음으로이루어주시길바랍니다. 너무도사랑하는1,400 학우여러분. 저는이제여러분과함께숨쉬고생활할것입니다. 11월10일한상용올림 - 유서중에서- 한상용 (당시23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70년 전남 해남 출생 1983년 광주 효덕초등학교 졸업 1986년 광주 북성중학교 졸업 1989년 광주일고 졸업 목포 해양대학교 입학 목포 해양대학교의 군대식 교육에 반대하여 입학 한달여만에 자퇴 1990년 광주교대 사회교육과 입학. 노래패‘에루얼싸’가입 교원종합대책안 분쇄를 위한 1학년 대책위장 1992년 사회교육과 제5대 학생회장 1993년 동아리 ESF 가입 초등 교육 개혁과 교대 교육정상화를 위한 4학년 대책위원회 위원장 활동 1993년 11월 10일 분신하여 투신 후 운명 끝내살리라 |73| |7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