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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密陽 古法里 朴翊 壁畵墓)
이 벽화묘는 고려말 杜門洞(두문동) 72賢(현)으로 유명한 松隱 朴翊(송은 박익)선생의 묘이다. 선생은 1332년 밀양 사포리에서 출생 자(字)는 태시(太始), 호(號)는 송은(松隱), 시호(諡號)는 충숙(忠肅), 본관은 밀성이다. 선생은 공민왕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정격(正卿)에 올랐고 여러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고려말 포은, 목은, 야은 등과 함께 팔은(八隱)으로 일컬어지는 충절신이다. 이태조 등극후 1395년 공조, 예조, 형조, 이조, 좌의정 등 다섯차례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이 벽화묘는 1420년(세종2년)에 축조된 것으로써 1999년 9월 태풍우로 첨하된 봉분은 보수하는 과정에서 지석(志石), 유물과 함께 조선시대 벽화묘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굴된 채색 벽화묘이다. 봉분의 규모는 가로 605cm, 세로482cm, 높이 230cm의 고려식 방형묘(方形墓)이다. 석실(石室)은 봉분 정상부에서 410cm깊이에 풍화 암반층을 굴착하여 남북으로 장방형 토갱(土坑)을 설치, 그 속에 토갱따라 화강암 판석을길이 235cm, 높이 80cm, 폭 90cm의 장방형 석실을 조립한 뒤 먼저 판석 내면을 석회로 도장(盜葬)하고 그 위에 채색벽화를 그렸다. 이 벽화묘의 특징은 그 시대에 흔히 그려진 일반적인 벽화와는 달리 인물, 도구, 말 등의 생활풍속도와 장벽(長壁) 양쪽 가장자리에 매죽(梅竹)그림을 배치한 것이 주목된다. 또한 벽화내용 가운데 양쪽 장벽 그림 속 인물들이 4인 1조를 이루면서 피장자의 두향(頭向)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남서 단벽(單壁)의 그림은 모두 상화 대칭관계의 구도로 그려져 있다. 이 벽화묘에 그려진 매죽(梅竹)은 고려 태조 왕건릉(王建陵)의 사신도(四神圖)와 함께 인물 풍속도에서 세한삼우(歲寒三友)가 교대해서 그려진 것은 국내에서는 유일한 벽화로서 고려말 조선초 벽화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