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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이원대(李元大)열사 생가
소재지 :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139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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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이원대(1911~1943)열사가 태어나서 중국으로 망명하 기까지 살았던 생가이다. 이원대 열사는 1911년 12월 29일 경북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139번지에서 이중호(李重鎬)와 정오동 (鄭梧桐)과의 5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백학학원을 거쳐 자천 보통학교와 영천농업보습학교(현, 영천중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인근마을 이진영(일명, 우자강)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 하였다.
중국으로 망명한 이원대 열사는 김원봉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 정치간부학교와 중국중앙육군군관학교 낙양분교·성자분교를 졸업하였으며 1938년 10월 10일 김원봉의 주도로 조선의용대가 창립되자 윤세주·이진영 등과 함께 창군 주역으로 참가하여 호남성, 호북성, 강서성과 산서성, 하북성 변경의 태항산 일대를 중심으로 수 십 차례의 대일 전투에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 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는 공문덕(孔文德), 마덕산(馬徳山) 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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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조선의용대(군) 분대장에 임명된 이원대 열사는 석가장 일대를 중심으로 대일 무장투쟁과 대원 모집 활동을 활발히 전개 하던 중 불행히도 일본군에 체포되어 군사정탐죄로 사형을 선고 받고 1943년 6월 17일 북경 일본군 헌병대 본부에서 총살형에 의해 순국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열사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으며 1998년 6월에 국가보훈처·광복회· 독립기념관이 공동으로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여 열사의 독립운동 정신을 널리 선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