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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과 실천 91 도로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공공 여론과 언론을 무시하는 정책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다음은 일 본의 유력 신문이 보도한 찬사로 가득한 개탄입니다. “언론에 대한 데 라우치의 대응 정책은 정말 효율적이었다. 가장 유력한 신문을 모두 짓 밟았을 뿐 아니라, 가장 약한 신문을 복종하도록 만들었다. 여론이 자유 롭게 분출될 수 있는 모든 출구를 봉쇄했으며 바깥 세상에 한국의 실제 상황을 모르도록 했다.”( 도쿄 아사히 , 1916년 10월) b) 사법행정 일본은 한국을 일본 국민과 같은 법으로 통치한다고 했습니다. 그러 나 법에 따른 통치는 단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법의 적용에 있어서 특별법이 일반법에 우선한다는 법적인 원칙에 따라 6개의 일본 법은 방대한 양의 특별법이 적용되는 상황에서 완전히 무용지물이었습 니다. 더군다나 특별법이건 일반법이건 간에 이 법은 일본인이 만든 것 으로 한국 사람을 전혀 모르며 한국의 역사, 전통적 기관, 관습과 특히 한국 사람의 감정을 전혀 모르는 이들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일본법이 한국인에게 맞는다고 치더라도 적용 자체가 편파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음모”라고 불리는 유명한 소송만 보더라도 한국인이 법으로 어떻게 보 호를 받는지 잘 보여줍니다. 데라우치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추 정만으로 결백한 농민, 젊은 학생과 수많은 지식인들을 체포하는 것은 너무 과한 일입니다. 신중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자백을 얻어내기 위 해 조직적으로 고문을 했다는 모순적인 소식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행히도 이 같은 소문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고문 받은 123명의 포로들은 현재 석방되었는데, 그들은 모두 각각 어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