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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지구 전적비 9 m 8월 5일 자정, 북한군 4사단은 이곳을 지킨 미 24사단 미 2사단 제8연대 반격을 물리치고 중간요지인 클러버 고지 및 오봉리 능선을 점령하여 일부 병력을 후방까지 침투시켜 한때의 위기를 빚게 했다. 예비부대인 미 제 5해병연대가 17일 영산전투에 투입되 연합군의 반격에 쫓긴 적은 클러버 고지 및 오봉리 능선으로 퇴각, 저항을 시도했으나, 아군의 맹렬한 폭격과 지상공격에 지리멸렬 간신히 낙동강 서안으로 퇴각했다. 북한군 4사단이 대패 하자 이번엔 8월 31일 심야에 훨씬 큰 규모의 공세로서 영산정면을 방어하던 미 2사단 제9연대를 물리치고 일거에 영산으로 육박해 들어왔다. 그 위기는 제1차보다 더욱 심각했으나, 영산사수의 결의로 뭉친 사단을 공병 대대를 위시한 지원부대까지 용감히 싸워 적의 남침을 저지했고, 마침내 미 제5해병 연대의 배속 받은 사단은 9월 3일에 총반격을 개시 3일간 계속된 공방전 끝에 두 실지를 회복했다. 당시 북한군은 부산지역 공격을 위해 이곳 영산지방에서 막바지 대공세를 폈으나 미군과 아군의 결사로 남침이 저지된 격전지였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하여 산화한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고 전공을 기리기 위하여 교통부 주관하에 국제관광공사가 집행을 맡고 국방부의 후원을 받아 이 전적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35 경남 창녕군 영산면 동리 산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