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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 공적사
동래 정씨 29세 정기갑 공과 월성 이씨의 외아들로 대구에서 출생. 한학을 전수 널리 후학들을 교도하였고 일제 무단 정치로 우리 민족의 생명과 재산이 유린 당하고 양민이 투옥되는 등 갖은 학정을 보고 분기 항거하면서 만고의 사태에 대비 호적명 윤주를 은폐코자 가명인 동석으로 사용 고인이 된 형 금도 동석으로 통용된다. 송두환 동지가 주축이 된 배일단체인 신배달회 및 빈민회에 가담하여 항일 독립운동에 결사적으로 활약하던 중 동지들이 상해 임정으로부터 인수 지참한 다수의 무기와 실탄 및 비밀 문서 보관을 위임받고 본가 지하에 은밀히 보관하고서 무력투쟁으로 전환코자 경남북 일원을 동분서주하여 많은 동지를 규합하는 동시 임정 군자금 모금을 하던 중 3.1운동이 일제 강압으로 무산되자 항일 주비단을 조직 제2경북사건을 동지들과 비밀 수에 모의 실천코자 했으나 경남 선녕 일인 순사 갑비 살해 사건 후 노기용 동지가 체포되면서 주비단 조직이 탄로되어 무력투쟁 감행 즉전 일경에 많은 동지들과 피검되고 보관 중이던 무기와 실탄 비밀 문서 전부를 압수 당하고 특히 정동석 동지에게는 무기 반입출 경위와 군사 주비단 조직 및 임정 자금 조달에 대한 전모를 조사하기 위하여 3년 여 동안 혹독한 고문과 박해가 가해졌다. 출옥 후에도 배일사상을 널리 고취. 옛 동지들과 연락 지하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므로 항상 요시찰 인물로 지목받아 수십차에 긍한 경찰 조사를 받는 등 갖은 고난을 당하여 오던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해방 후 건국운동에도 참여하면서 김구 선생 등 예경북부위원장 등 지역 육영사업에도 활동 공헌하시다가 1967년 83세를 일기로 영면하시고 대통령으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