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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일운동
1910년대 국내 항일운동을 대표하는 대한광복회를 주도한 사람은 울산 송정 출신 박상진이었다. 그는 전국을 무대로 독립운동 조직화와 자금 마련, 친일파 처단을 주도하다가 1918년 2월 체포되어 1921년 8월에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울산 범서면 입암과 웅촌면 석천의 유림들은 유림계 항일 운동 지도자인 심산 김창숙과 함께 항일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금에도 힘썼다.
1920~1930년대에는 울산 지역에서도 청년 운동과 농민운동, 신간회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여기 참가한 독립운동가들이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체포되어 고초를 당하였다. 1940년대에는 전시 체제 아래에서도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맞선 울산 청년 학생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다. 울산 출신으로 군내 다른 지역으로 나갔던 청년과 학생들도 일제의 부당한 차별과 강제 동원을 비판하며 시위를 벌였고, 비밀리에 독서회와 청년회를 조직하여 반일 의식을 북돋우다가 갖은 어려움을 겪었다. 울산이 낳은 위대한 한글학자 최현배는 민족 정체성의 뼈대인 한글수호와 연구에 매진하다가 구속, 수감되었으며, 일제가 패전한 뒤에야 함흥형무소에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