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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수는 1919년 김마리아·신의경(辛義卿) 등과 함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를 조직하고 상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와 연결,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헌납하는 한편 애국지사(愛國志士) 들의 비밀연락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1년에는 김상옥(金相玉)이 윤익중(尹益重) 등과 혁신단(革新團)을 조직하고 〈혁신공보(革新公報)〉를 발행하여 친일매국노를 처단하기 위한 암살단을 조직하자, 주요 회의장소를 제공하고 숙소 및 의류·자금 등을 공급하며 적극 협조하였다. 또한 1922년 12월, 김상옥이 상해로부터 무기 등을 반입하자 김상옥을 자신의 집에 피신시키고, 비밀연락과 제반 편의를 제공하였다. 1923년 1월에는 윤익중(尹益重)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 100원을 받아 김상옥에게 전해 주었으며, 같은 해 1월 12일 김상옥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18일 효제동 자택으로 찾아오자 김상옥을 나흘동안 은닉시켰다. 이어 22일 새벽 일경 수백명이 효제동 일대와 그의 집을 겹겹이 포취를 하고 집안으로 진입하자 김상옥은 양손에 권총을 들고 3시간 동안 일경과 격전을 벌인 끝에 마지막 총탄으로 자결하였다. 그는 김상옥의 거사로 인해 온가족과 함께 일경에게 끌려가 잔혹한 고문을 받았으며, 1923년 12월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