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1page

359 240~250명, 성산포 6명, 제주 500~600명)이 넘는 제주인들은 당시 계엄군(육군본부 정보국 CIC(방첩대)와 해병대 사령부 정보과)에 의해서 아무런 법적 절차없이 한 밤중에 무참히 총살. 이름모를 산야에 암매장되거나 깊은 바다에 수장되었다. 현재까지 이곳만이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제주도내 유일한 학살터이다. 50년 8월 20일(음 7월 7일) 모슬포 경찰서에 예비검속된 357명 중 252명(숫자는 ‘극비( 極 秘)’ 문서에 의함)을 새벽 2시경과 5시경 2차에 걸쳐 밤중에 총살(해병대 모슬포 주둔군 4대대) 돌무더기와 함께 암매장했다. 그러나 만행은 당일 새벽 유족들에 의해서 발각되고, 그 시신 인도를 시도하였으나 당시 계엄군경이 무력( 武 力) 으로 저지하였고, 이곳을 7년 동안 ‘출입금지’ 구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1956년 3월 29일 새벽 한림지역 유족들이 61위를 수습하여 한림읍 명월리 ‘개꼬리 오름’에 안장했다. (현재 46위만 남았음) 1956년 5월 18일 백조일손 유가족의 끈질긴 탄원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아 149위를 수습하여 그중 132위를 상모리 지경 ‘백조일손지지( 百 祖 一 孫 之 地)’, (조상이 다른 132명이 죽어 뼈가 엉퀴어 하나되었다.)에 안장했다. (5.16 쿠데타 당시 23위 강제이장, 현재 109위 남아 있음). 1962년 9월경 이곳에서 철근을 채취하던 인부들에 의해서 유해 2위가 발견되어 윗동산에 이장했다. (현재 그 위치를 정확히 추적중)-(발굴총계 212위)약 90위가 아직도 이곳에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 현재 재 발굴을 ‘국방부’의 허가를 얻고 제주도의 후원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유족들이 가슴에 ‘50년의 한( 恨)’ 으로 응어리진 이곳을 탈바꿈하여 천부적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깨우치는 역사박물관(Historical Museum)으로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 2000년 11월 20일 유해 재 발굴 착수에 즈음하여, 2017년 4월 재정비 제주특별자치도, 백조일손 유족회, 예비검속에 의한 피학살자 한림지역 유족회 [영문] 안내판 1-1(뒷면)에 있음 안내판 설명 1-1(1 뒷면) [한글] 제주 4·3 유적지 섯알오름 위치 :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597-3번지 일대 이곳은 제주4·3사건이 진정될 국면으로 접어들 무렵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내무부 치안국에 1945년 미군정에 의해 폐지된 예비검속법 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