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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탐방지로 이동하려는데, 이곳의 이름이 '석주로' 와 '육사로' 였다.
安東三一運動紀念碑(안동3.1운동기념비) 이 기념비는 안동지역에서 펼쳐진 3.1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광복 40주년인 1985년 8월 15일 세운 것이다. 안동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부터 27일까지 15일 동안 11개 지역에서 14회에 걸쳐 일어났다. 안동.예안. 도산.임동.임하.길안.풍산 장터가 그 주된 장소였다. 안동과 예안, 임동면은 1,500명에서 3,000명에 이르는 대규모 군중이 참가하여 치열한 항쟁을 펼쳐진 곳이다. 특히 3월 23일에 일어난 안동면 3차 시위는 안동군민 전체가 참가하여 그 절정을 이루었고, 희생자도 많았다. 안동 3.1만세운동은 제국주의를 무너뜨려 자주 국가를 되찾기 위해,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어선 선구적인 투쟁이었다. 계급과 종교, 이념의 차이를 넘어, 민족을 구하려는 대열에 하나같이 참가하고 움직였다. 3.1운동은 나라 밖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졌다. 서간도에 망명한 이상룡.김동삼이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특히 망명지에서 독립국 대한민국을 세우고, 이를 운영할 임시 정부를 만드는 일에도 안동인의 기여가 컸다.
선조들의 3.1운동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안동유도회가 발의하여 기념비건립위원회를 만들고, 시민들의 정성을 모아 - 동아일보사와 함께 이 비를 세웠다.
김영중(金泳仲)이 설계 조각하고, 이희승(李熙昇)이 짓고, 여원구(呂元九)가 글씨를 썼다.
碑文(비문)
洛東江이 흐르는 맑은 호수가에 崇高한 三一精神을 기리는 紀念碑가 아침 햇살을 받고 높이 솟아 있다
아 겨레들이여 씩씩한 抗日鬪爭의 魂이여
一九一九年三月一日 온 겨레는 自由를 찾기위해 獨立萬歲를 山川 이 떠나가도록 외치고 이 喊聲은 地軸을 흔들었다.
日帝의 無慈悲한 총칼에 맞서 분연히 일어선 우리의 熱火같은 의지를 누가 감히 막을수 있었으랴
억울하게 나라를 빼앗긴 백성들은 그 울분을 참다 못해 국내외에서 三一萬歲를 부르며 일어서게 되었고 그 항쟁의 불꽃이 祖國光復의 씨앗을 民衆의 가슴속에 뿌려놓았으며 곧 그 씨앗이 解放 自由의 기쁨을 얻게한 것이다
安東郡民들은 三月十二日의 봉기 계획이 탄로되자 닷새후인 十七日 臨東 禮安을 비롯 三月二十三日에는 安東邑内에서 数千群衆들이 또 다시 萬歲를 불러 数十名이 피살되었고 数百名이 投獄負傷 하였다 이렇듯 잔인한 주검과 獄苦를 겪으신 先烈들의 피의 댓가로 解放을 맞이한후 어언 四十年이 지난 오늘 安東儒道會가 發議하고 三一精神을母胎로 創刊된 東亞日報社와 安東群民들의 愛國丹誠을 합쳐 由緒깊은 이곳에 三一運動紀念碑를 建立하여 거룩한 三一精神이여 길이 萬代에 드높이려 한다.
거룩한 三精神이여 洛東江믈 처럼 永遠히 맑고 푸르고 줄기 차리라
西紀一九八五年八月十五日 安東三一運動紀念碑建立委員會 東亞日報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