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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보상운동 1904년의 고문정치 이래 일제는 한국의 경제를 파탄에 빠뜨려 한국을 일본에 예속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정부로 하여금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하게 하였다. 여기에 대항하고자 나라의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지자 몽양은 1907년 고향인 양평에서 국채보상 단연동맹지회를 설립하고, 매일 장터를 찾아다니며 담배를 끊어 국채를 갚자는 계몽강연을 하였다. 자신도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해 술과 담배를 딱 끟었다고 한다. 조선이 독립이되기 전에는 절대로 입에 안대겠다는 결심을 한 그날 이후 몽양이 술을 마시는 것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해방이 되자 친지들이 이제는 몽양에게 술과 담배를 하라고 권했지만 몽양은 나라가 통일이 된 다음에야 피우고 마시겠다며 거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