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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동 (당시24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9년 10월 24일 전남 여천군 출생 1989년 순천고등학교 졸업 광주교대 윤리과 입학, 교육동아리‘아히 ㅅ 랑’참여 1990년 동아리 연합회 간부 활동 1990년10월 교원 종합대책안 반대투쟁 시 직격 최루탄으로 다리골절 부상 1991년 2학기 총학생회 사회부 차장으로 활동 1992년 4학년 과 대의원으로 활동, 북한이해 분과장 역임 1992년 11월 광주전남 교사 청년회 간사로 활동 1993년 9월 8일 분신 항거 1993년 9월 9일 운명 |70|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고민해왔던 동지는 내성적이면서도 때로 는 누구 못지않게 활발하게 생활했으며, 자치공간의 청소를 도맡아 할 정도로 근 면하고 성실하였다. 책임감이 강했고, 자기 자신보다는 동기나 후배들을 먼저 챙기며, 서로에게 도 움이 될 수 있는 글을 적어 그들의 삶을 공유하려고 노력했다. 임용고시 철폐 투 쟁기간 동안 모든 학우들과 함께 투쟁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느끼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보다 항상 깨어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자며 다짐했다. 동지는 교원 종합대책안 반대투쟁 시 직격 최루탄으로 다리골절 부상을 입기도 하였으 나, 이에 굴하지 않고 ’91년에는 총학생회에서 사회부 차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 다. 그 다음해에는 4학년 과 대의원 활동과 광주전남 교사 청년회 간사로도 활동 하였다. 분신하기 일주일 전의 생활을 살펴보면 동지가 자신의 삶을 정리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아리 방에서 책을 정리하며 동기와 후배들이 갖고 싶어 하는 책들을 나누어 주었고, 부모님과 할머님께 드릴 선물을 마련하는가 하 면 5일 일요일 오전에는 망월동에 참배를 다녀왔다. 오후에 고향으로 내려가 부 모님과 할머님께 선물을 드리고, 6일 아침 일찍 광주에 올라와서 동기와 후배들 에게 선물을 주었고, 7일 저녁에는 10여명의 동기들에게 안부전화와 더불어 열 심히 생활해 나가라며 격려하였다. 이렇듯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면서 의지를 재 차 다져가며 죽음을 준비하였다. 8일 12시 45분경 음악관 뒤편에서‘임용고시철 폐, 주한미군 철수와 기만적인 김영삼 정권을 반대 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 하였다. 동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추모집「민들레 투혼으로」를 ’93년 9월 20일 발행 하였다. 끝내살리라 |71| . . 아직끝나지않는싸움을 해나가겠노라고! 열사여! 해방의민들레로 부활하소서 - 하나되기1949년9월13일아히ㅅ랑후배가 경동이형을보내며- 열사여고이잠드소서! 머저가신열사들의무덤앞에서 다짐하신그대의말씀 산자의따르름으로외침으로 이어가겠노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