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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우(元泰祐) 의사
원태우 의사께서는 1882년 3월 4일 과천면 안양리 642번지(현재의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642번지)에서 출생하셨다. 원의사께서는 1905년 11월 22일 이토히로부미가 수원에 사냥을 갔다가 안양을 거쳐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타고 서리재고개(현재 안양육교)를 지날 때 혼자의 몸으로 돌을 던져 큰 상처를 입히고 일경에 체포 구금되었다.
이 의거는 민간 항일운동의 효시가 된 거사로써 당시 대판매일신문, 대한매일신문, 동경매일신문 등의 언론은 물론이요. 일본이 제작한 일로전쟁화보와 속음청사에도 그 내용이 수록된 일대 사건이었다. 원의사께서는 1906년 1월 24일자로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루었다. 당시의 고문으로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지내신 원의사께서는 69세의 일기로 수푸루지(지금의 안양 비산동)에서 타계(1950년)하셨다.
그후 40년이 지난 1990년 정부에 의해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