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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민족대표 양한문선생 추모비 안내판 지강 양한묵선생님은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의 한사람으로서 1862년 4월 29일 해남군 옥천면 영신리에서 출생하셨으며, 20살 때인 1882년 화순군 화순읍 앵남리로 이사하셨다. 1902년 개화운동단체인 진보회를 결성하여 국민들의 개화운동에 열정을 쏟아 왔으며, 1919년 3.1운동때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의 한사함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말하기를 "나는 한일합방을 결사 반대한 사람이며 민족자결이 제창되는 이 마당에 일본정부는 도리상으로 민족자결을 인정할 것이라고 믿고 이번 독립운동을 거사한 것이며 다음에도 기회만 있으면 계속할 것이다"라고 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며 온갖 고문에 시달리다 조국광복을 염원하며 1919년 5월 16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으며 유해는 서울 수유리에 안장되었다가 3년후인 1921년에 화순군 화순읍 앵무산 자락으로 이장하였다. 평생을 민족의 자존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양한묵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삼일민족대표 양한묵선생 추모비는 당초 화순읍 훈리 35번지 화순군청앞에 건립하였으나 1984년 10월 26일 충혼탑이 건립될때 현위치(화순군 광덕리 산 87번지, 남산공원)로 이축하여 매년 6월 6일 현충일 날을 맞이하여 평생을 애국애족에 바친 고귀한 얼을 추모하고 있습니다.